tbs 즐거운 산책

백석의 시 '수박씨 호박씨' (2016년 7월 17일)

divicom 2016. 7. 17. 23:29

오늘은 제헌절이자 초복... 얼마나 많은 닭들이 저 세상으로 갔을까요?

제가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진행하는 tbs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FM95.1MHz)'에서는 '소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Sam Cooke의 'Summertime', 바리톤 문병인 씨의 '제헌절 노래', Barbra Streisand의 'What Matters Most', Whitney Houston의 'Never Give Up', 이장희 씨의 '당신은 누군가요' 등 좋은 노래들을 들었습니다.


3부 시작할 때는 2012년 백석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김현성 씨가 발표한 앨범에 있는 곡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제목은 백석의 대표작 제목입니다. 노래를 들은 후엔 백석의 또 다른 시 '수박씨 호박씨'를 읽었습니다. 시의 첫 대목은 이렇습니다.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 와서

어진 사람의 즛을 어진 사람의 마음을 배워서

수박씨 닦은 것을 호박씨 닦은 것을 입으로 앞이빨로 밝는다.

수박씨 호박씨 입에 넣는 마음은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고 게으른 마음이나

이것을 또 참으로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이라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오랜 세월이 아득하니,

오랜 지혜가 또 아득하니, 오랜 인정이 깃들인 것이다..."


어진 사람의 마음을 배워서 수박씨와 호박씨를 앞니로 바른다는 건데요, 요즘은 어진 사람이라는 말을 별로 쓰지 않고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어질다의 뜻은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행이 높다.’입니다. 그러니 어진 사람은 단순히 착한 사람이 아니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수박씨와 호박씨 닦은 것의 닦은’은

볶은’을 뜻하는 북한말입니다. 백석 시인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입니다. 그러니까 볶은 수박씨와 호박씨를 입에

넣고 발라먹는 사람, 그 철없고 게으른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그윽하고 깊은 마음을 지닌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욕심 많은 사람들은 늘 바쁘니, 수박씨나 호박씨를 입에 물고 유유자적하는 사람이라면 욕심 없는 사람이겠지요. 시의 마지막 줄을 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 하고 누었던 사람도

그 머리맡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오늘의 노래'는 송창식 씨의 '고래 사냥'이었습니다. 이 노래는 1975년에 나온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삽입돼 큰 

인기를 끌어서, 그해 신세계레코드 사에서 만든 골든 포크앨범에 수록됐는데, 바보들의 행진은 소설가 최인호 씨가 1972년에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는 최인호 씨가 노랫말을 쓰고 김수철 씨가 작곡했는데, 바보들의 행진에 삽입돼 큰 인기를 끈 또 다른 노래 왜 불러와 함께 대학생들의 시위 현장에서 불려지며 금지곡이 됐고, 음반도 판매금지 됐습니다


오늘 마지막 노래는 조용필 씨의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이었습니다. 오늘 들려드린 음악 명단은 tbs 홈페이지(tbs.seoul.kr) '즐거운 산책...' 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제 칼럼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소음과 친구'를 옮겨둡니다.


소음과 친구

 

사람마다 좋아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 오페라를 좋아하는 사람,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 텔레비전을 좋아하는 사람...

 

산책로는 조용히 산책을 즐기는 공간이지만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 중엔 라디오나 스마트폰으로

가요나 오페라를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페는 차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담소하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게임이나 텔레비전 다시보기를 하며

떠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소나타나 김소희 선생의 판소리도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는 소음으로 느껴지듯

누군가에겐 정겨운 소리가 다른 사람에겐

휴식과 사색을 방해하는 소음이 되는데요,

 

좋아하는 것일수록, 친구가 되어주는 것일수록

시간과 장소에 어울리게 즐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 친구가

공공의 적이 되니까요.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게임,

방이나 자동차 같은 사적인 공간에서 즐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