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도서관은 우리나라 도서관 중에서도 가장 중심적 역할을 하는 도서관이지만, 이 도서관의 관장 자리가 언제부턴가 정치인들의 임시 거처나 폴리페서들의 놀이터가 되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마침 김수종 선배님이 이 문제를 자유칼럼에서 다루셨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 | | | | 6·25 한국전쟁으로 국회의사당도 대구, 부산, 서울로 이사 다니며 오락가락했습니다. 변변한 건물 하나 없던 시절 국회 회의가 열릴 만한 대구와 부산의 극장이 임시 국회의사당 노릇을 했습니다. 서울 수복으로 귀경했던 국회의사당은 1·4후퇴로 다시 부산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2차 피난 시절인 1951년 6월부터 1953년 8월 서울 환도 때까지 임시 의사당으로 사용된 집이 경상남도 도청 안에 있는 무덕전(武德殿)이었습니다.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습니다. 나라꼴이 꼴이 아니었던 전쟁 시절이었지만 책도 읽고 입법 자료도 뒤져볼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국회의원들이 더러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1952년 2월 무덕전에 조그만 공간을 마련하여 ‘국회도서실’을 설치했습니다. 책은 존 무초 주한 미국 대사가 대여해 준 700권을 포함하여 3,604 책을 비치했습니다. 사환 한 사람을 포함하여 직원이 4명이었는데 그 1호 직원이 바로 서예가로 유명한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이었습니다.
이렇게 난리 중에 탄생한 국회도서실은 65년 후인 오늘날 국회도서관으로 도약하였습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경내에 5층짜리 대형 건물에 일반도서 323만 권을 포함, 전체 소장 정보자료가 450만 점에 이릅니다. 국회도서관은 국립도서관과 함께 국가 도서관의 양대 축을 이룹니다. 국회도서관의 독자적 대표 사업으로는 국가서지 작성 및 배포를 비롯해 학술정보 상호협력, 의회법률정보 서비스, 각종 자료서비스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국회도서관의 핵심 기능은 뭐니 뭐니 해도 국회의원에게 입법정보와 자료를 풍부하고 편리하게 제공하고, 국민들이 다양하게 도서와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국회도서관에는 약 3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통솔하며 조직을 대표하는 자리가 국회 도서관장입니다. 국가의 녹을 먹는 기관장이 수없이 많지만 ‘국회 도서관장’ 하면 제법 권위와 명예가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상류 권력 사회, 특히 정치권에서는 별로 힘 있는 자리로 인식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국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일반 시민들에겐 국회 도서관장이 누구인지조차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그저 어른 노릇하는 고위직의 한 사람으로 생각되고 있을 뿐입니다.
과거 군부독재 또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국회 도서관장은 청와대 또는 여당 권력자들이 수하를 챙길 때 써먹는 자리였습니다. 정말 ‘감투 하나’ 정도였습니다. 1988년 민주화 시대 이후에는 권력지형의 변동으로 국회 도서관장은 제2당(대개 야당) 몫이었습니다. 두 개의 국회 요직 중 사무총장은 제1당이, 그리고 도서관장은 제2당이 차지하는 나눠먹기식 관행이 정착되어 온 것입니다.
국회 사무총장이야 정무성(政務性)이 강해서 정치인들이 맡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지성과 권위의 상징이어야 맞을 것 같은 국회 도서관장이 정치인들의 취업자리로 전락한 것은 어딘지 어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역대 국회 도서관장은 제2당 실력자의 입김을 받는 인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회 도서관장의 임면권은 명목상 국회의장에게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국회 도서관장의 임기는 의장의 임기와 같은 2년입니다. 그러나 실제 추천은 국회운영위원회가 담당하며, 운영위원회는 사실상 제2당 원내 대표가 갖고 온 명단을 의결해주는 요식행위만 했습니다.
이러니 국회 도서관장은 국회의원을 하다가 낙선한 사람이거나 정당이나 당의 보스에게 잘 보인 사람의 임시 거처처럼 되었습니다. 도서 관장으로서의 전문성을 갖췄거나 정치적 편향성이 없는 사람이 국회 도서관장실에 들어가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이제 국회 원구성이 새로 되었으니 도서관장도 새로 임명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소속 원혜영 의원이 관행과 다른 제안을 했습니다. 그는 국회의원 300명 전원에게 편지를 보내어 “관례적으로 원내 2당이 갖기로 되어 있는 국회도서관장 추천권을 내려놓자.”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듣고 헷갈렸습니다. 지금 제2당은 어느 당인가. 새누리당인지 더불어민주당인지 국민에겐 확연하지 않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제2당이라면 원 의원의 제안은 요즘같이 자기 당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현실에서 신선합니다. 그가 이런 주장을 펴는 것은 전문성이 부족하고 정치적 편향이 심한 인물이 국회도서관장이 되는 것을 막아보자는 취지라고 합니다.
원혜영 의원이 이런 논란을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원 의원은 2014년 제2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치혁신실천위원장을 맡으면서 국회 도서관장 추천권을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국회 도서관장 후보자 추천위원회'에서 심사해 결정토록 당론을 이끌어냈습니다. 해서 학계에서 활동하던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국회도서관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국회에서는 이렇게 해서 뽑힌 도서관장이 교수시절 원혜영 의원을 지원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생겼지만, 옛 관행을 탈피한 것은 분명합니다.
원 의원의 주장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반응이 그렇게 뜨겁지 않아 보입니다. 국회 도서관장의 비중 탓이기도 하지만 국회개혁을 놓고 다른 심려가 많은가 봅니다. 국회가 특권을 내려놓는다는 취지에서도 그렇지만 한국 사회의 품위와 지식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국회 도서관장은 정치적 편향성이나 이데올로기 편향성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국회 도서관장에 지성적으로 권위와 품위를 인정받으면서도 마지막으로 국가에 봉사하려는 자세를 가진 인물을 추천하고 선발하는 시스템을 여야가 합의하여 만들어 봤으면 좋겠습니다. 미국도 대통령이 의회 도서관장을 임명하고 상원의 인준을 받도록 되어 있지만, 역대 도서관장을 보면 학문적 깊이가 있는 역사학자 등 지성인이 되는 경우가 많고 임기도 10년을 보장받고 있습니다. 국회 도서관장을 정치권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출세 디딤돌이나 정치교수(폴리페서)의 중간 놀이터가 되지 않게 된다면 한국 사회도 한 걸음 전진하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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