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세월호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2016년 7월 20일)

divicom 2016. 7. 20. 08:13

아버지를 잃고 처음 겪는 여름, 더워도 더운 줄 모르겠습니다. 눈물은 싫어 하고 웃음은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를

이상하다고 할지 모릅니다. 예순 넘은 딸이 아흔 넘어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고 날 때 눈시울을 적신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런 것이지요. 사랑이 깊으면 그리는 마음이 크고 오래갈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 사랑이 떠날 때가 되어 떠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잘못으로 너무나 부당하고 이르게 떠나갔다면, 

그 그리움은 시간이 흘러도 옅어지기 어렵겠지요. 세월호에서 숨진 젊은이들은 바로 그런 그리움의 대상입니다. 

오늘 오후 4시,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그들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쓰인 책 <짧은, 그리고 영원한>을 주제로 

북콘서트가 열린다고 합니다. 어제 경향신문에 르포작가 박수정 씨가 이 책과 슬픈 젊은이들에 대한 얘기를 썼기에 여기 옮겨둡니다.



친구를 빼앗긴 ‘스무 살’들

박수정 | 르포작가

‘꿈에 친구가 살아 왔어요.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친구가 다른 애들과 웃는데 나는 꿈이라는 걸 아니까 울었어요. 이제 친구는 우리보다 두 살 어린 건가요? 새로운 거, 좋은 걸 경험할 때마다 생각해요. 친구도 나처럼 이런 거 해보면 좋을 텐데. 정신없이 바쁠 때는 가끔 잊어요. 그러면 미안해요. 일 끝내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있으면 친구가 생각나요. 어느 날 걔가 막 보고 싶어 전화를 했어요. 한참 신호를 들었어요. 나중에 친구 엄마가 번호를 보고 전화하셨어요. 우리는 같은 대학에 가자고 약속했어요. 친구가 배우고 싶었던 화학 과목을 내가 대신 들었어요. 사실, 지금도 실감이 안 나요, 친구들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게. 길게, 좀 아주 길게 멀리 여행 가서 아직 안 온 것만 같아요. 내 친구 이야기를 마음껏 하고 싶은데 할 데가 없었어요.’

6월에서 7월, 스무 살들을 만나러 다녔다. 아홉 명은 일 년 만에 다시, 두 명은 새로 보았다. 모두 같은 해 4월 친구를 잃었다. 단짝 한 명이 아니라, 무리지어 다닌 몇 명이 아니라, 한동네에 초·중학교 동창에 친구의 친구까지 하면 250명을 잃은 셈이다.

‘영어듣기 평가를 마치고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자는데 애들이 막 깨워 스마트폰을 켰더니 배가 가라앉고 있었어요. 컴퓨터 수업시간이었어요.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친구 학교 이름이 떠서 연예인이라도 왔나 했는데 사고가 났어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었어요.’

느닷없이 덮쳐온 소식. 나라가 구하리라 믿었는데 아니었다. 태어나 처음, 벗의 죽음을 목격했다. 그해 4월과 5월, 날마다 교통카드를 충전해 여기저기 차례차례 장례식장을 찾아야 했던 열여덟 살들이 스무 살이 되었다. 동네 구석구석 누비며 함께 자란 어깨동무, 속닥속닥 이야기 나누며 서로 마음 기대고 북돋던 씨동무는 왜 살아오지 못했나. 아무도, 아직도 모른다. 어울려 걷던 길 어느 만치에서 누구야! 이름 크게 부르며 달려들어 목을 꼭 끌어안을 것만 같은 그 애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없다.

‘그 애 집 앞에서 만나 학교까지 걸어 다녔어요. 다시 그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가보았는데 친구 집 앞에서 멈춰 엉엉 울었어요. 그 길로 가지 않으려고 버스를 타면 버스 타고 다닌 다른 애가 떠올라 울었어요. 어릴 때 친구랑 살던 동네에 갔더니 가게 이모들이 친구는? 하고 물어요. 둘이 늘 붙어 다녀 유명했거든요.’

친구를 빼앗긴 스무 살들은 지금 취직하거나 대학에 다니거나 재수한다. 공부하면서도 아르바이트하느라 시간도 없고 몸도 고되다. 하루 내내 온갖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생활은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 그래도 목표한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바지런하다. 구명조끼를 입고 침착하게, 당연하고도 마땅한 구조를 기다렸던 친구들과 함께 맞기로 한 오늘이었다. “우리 스무 살 되면 꼭 해보자”던 갖가지, 약속하던 목소리와 웃음이 귀에 쟁쟁하다.

그 동무들 얼굴을, 목소리를, 몸짓을 어찌 지우랴. 그대로 둔 전화번호, 카톡에 바꿔가며 올리는 친구 사진, 그 위에 누구누구야, 열아홉 생일 축하해, 스무 살 생일 축하해! 친구 페이스북에다 안부를 묻고, 교실과 분향소, 추모공원을 찾아 나 왔어, 말을 건다. 미치도록 보고 싶으면 받지 않을 걸 알면서 전화한다. 걸걸한, 장난스러운, 포근한 그 목소리 딱 한 번만 들을 수 있다면….

지난해 작가 139명이 가족, 친척, 이웃, 선생, 친구와 만나 기록해 올해 5월 4·16 단원고 약전 <짧은, 그리고 영원한>을 펴냈다. 열여덟 해, 웃고 울고 노래하고 사랑하고 고민하고 꿈꿨던 삶을 짧은 글로 되살리는 일에 내가 만난 이들도 함께했다. 주고받은 편지와 카톡, 같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 하나라도 더 자기 친구를 알 만한 흔적을 그러모아 내게 주고 추억을 헤집어 이야기해주고 곳곳을 걷게 해주었다. 친구들이 돌아와 자기들끼리 간직해야 했을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미안했다.

친구 이야기가 실린 책을 받아든 스무 살, 이들은 한결같이 진실을 알고 싶다고 했다.

오는 7월20일, 바로 내일 오후 4시,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이 책을 두고 북콘서트를 연다. 우리가 잃은 이들이 어떤 삶을 살고 꿈꿨는지 책을 읽어 알고 기억하는 것도 진실을 찾아 내딛는 한 걸음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