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청와대 보도 통제(2016년 7월 2일)

divicom 2016. 7. 2. 08:36

제가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분이 대통령이던 시절 우리가 언론 자유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학생이던 유신정권 시절부터 우리나라에서 언론의 자유는 책에만 있는 단어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나 전두환, 노태우대통령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분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국은 그분들 덕에 민주화했지만 그분들의 카리스마가 장애로 작용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언론인들 스스로 '알아서 적당히 쓰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러다 '연줄 없고 힘 없는'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국 언론계는 오랜만에 거의 완전한 언론의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새로 찾은 자유는 그것을 되찾아준 대통령 자신을 괴롭히는 데 사용됐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그 자유를 거둬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후 한국 언론계는 다시 자유를 잃었습니다. 


자유를 제약하는 건 정부와 재계입니다. 정부는 대통령이나 정책을 비난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기사의 크기와 톤에 개입합니다. 재계는 광고로 언론을 길들입니다. '그 기사를 빼주거나 줄여주면 광고를 주겠다', '그 기사를 쓰면 광고를 주지 않겠다' 하는 식으로 언론을 조종하는 겁니다.


놀라운 것은 대부분의 시민들이 이런 사정을 모른다는 겁니다. 이번에 청와대가 KBS의 보도를 통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런 일이 KBS에서만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참으로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아래에 오늘 아침 경향신문 사설을 옮겨둡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시민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다소나마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KBS 보도통제가 홍보수석 본연의 임무라는 청와대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6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70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31위로 최고점을 찍었으나 이명박 정권 때인 2009년 69위까지 추락했다가 이번에 최하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부끄러운 순위지만 ‘이정현 녹취록’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를 보노라면 70위도 후한 평가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비판 보도를 하지 말라고 압박한 이정현 전 홍보수석(현 새누리당 의원)의 행태를 두고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상 언론의 자유와 방송법이 명시한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보장’에 위배되는 발언이다. 대통령비서실이 언론통제를 ‘본연의 임무’로 간주하는 나라는 민주공화국이라 부를 수 없다.

어제 국회에 출석한 이 실장은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를 받고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이 뉴스를 보고 얘기했던 것은 홍보수석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협조를 (요청)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한다”고 답변했다. 기동민 의원 질의에 대해서도 “통상적인 업무협조 요청을 하지 않았나 한다”고 밝혔다. 이 실장 답변대로라면 지금도 청와대 홍보수석은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의 보도에 ‘통상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얼떨결에 사실을 고백한 건가, 아니면 억지 주장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건가. 이 실장은 야당에서 ‘박근혜 대통령발 제2의 보도지침’으로 비판하자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가장 어깨가 무겁고 마음이 아팠던 분이 누구겠느냐, 대통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에게 사과하는 대신 대통령 심기경호에만 애쓰는 비서실장을 보며 낯이 뜨거워진다.

무책임한 인식을 드러낸 청와대 인사는 이 실장뿐이 아니다. 김성우 홍보수석은 이정현 의원과 통화한 사실을 공개하며 “독자적 판단으로 전화를 했다더라”고 말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도 “(이정현·김시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다. 우리가 얘기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이 의원의 ‘개인적 일탈’로 몰고 가려는 의도가 읽힌다. 그러나 이 의원은 사장 임명권을 통해 공영방송을 쥐락펴락하는 청와대의 홍보수석이자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이런 인사가 ‘대통령이 뉴스를 봤다’는 말까지 해가며 기사 삭제를 요청한 것은 의도가 무엇이었든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언론 자유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침해한 데 사과해야 한다. 이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하고 방송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