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안철수, 최상룡, 김종인(2016년 1월 22일)

divicom 2016. 1. 22. 08:51

격화소양하는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언론계 선배인 남재희 선생이 한겨레신문에 기고하신 글을 보니 반갑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정치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닌데 안철수 씨는 너무 머리가 좋은 것 같습니다. 한때 '새 정치'에 대한 희망을 주던 그의 오늘 모습이 한숨을 자아냅니다. 


'정치'의 목적은 '권력'이 아니고 동료 시민들이 사람답게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나라가 오른쪽으로 잔뜩 기울어져 있는데 '중도'라는 애매하고 편리한 단어를 기치로 들고 나오는 신당, 표를 구걸하는 데에는 유용할지 모르지만,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정치의 근본 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에 그런 정치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런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정치 신인들이라도 그런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야 합니다. 아래에 남재희 선생의 글을 옮겨둡니다. 


최상룡·김종인 박사 이야기 / 남재희

문재인 대표의 당에서 안철수씨 중심의 당이 분당되는 과정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때에 그 진통이 바로 내 주변의 친지들에게까지 밀려왔다. 지난 1월7일 오랜 지기인 최상룡 박사의 책 <중용의 삶>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그가 일본 유학을 하였고 주일대사를 하는 등 일본과 인연이 깊기에 일본 학자 4명이 최 박사의 일생을 다각적으로 질문하여 만든 구술전기인데 원래 일어로 된 것을 이번에 국역하여 낸 것이다. 최 박사는 오래전부터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시장의 고문 역할을 해왔기에 그 두 사람이 모두 참석하였으며 정치 거물급 여럿의 축사가 있었다.


나도 한마디 말할 기회가 있어 그가 안철수, 박원순 두 사람의 고문 역할을 훌륭히 하기를 바란다고 말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나름의 한 가지 문제점을 제기해 보았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연구해왔고 신조로 삼고 있는 ‘중용’이란 것이 항용 보수적으로 비칠 수 있는데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 정도전의 혁명적 개혁사상과는 어떻게 조화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여러 명의 축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인 최 박사의 인사말이 있었는데 그는 인사말을 끝내면서 안철수 의원을 위한 박수를 요청하여 일동 박수로 모임이 끝났다. 귀빈이 왔고 그에겐 인사말을 할 기회를 안 주었으니 박수를 보내자고 한 것은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출판기념회의 대단원을 그 박수로 끝냈으니 꺼림칙하기도 하다. 나는 무슨 백지 위임장에 도장을 찍은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안 의원이 여론조사에서 인기가 높게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탤런트가 아니고 정치인인 그는 아직까지 추상적인 이야기만 했지 국민의 생활에 직결되는 정책 구상의 큰 줄기를 밝힌 바 없다. 그래서 ‘백지 위임장’이 떠오르는 것이다.


지금 안 의원이 내세우는 것은 ‘과격한 진보’와 ‘운동권 정치’의 청산이며 중도화 노선이다. 그 배경에 ‘중용’, ‘중민’ 등의 개념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오래전 <한겨레>(2015년 10월9일치)에 중도화 문제에 관해 글을 쓴 바 있지만, 야당 진영에 있어서 중도화 문제는 중요한 쟁점이다.

나는 한겨레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 사회 전반이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보수화되고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느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약간 개혁적인 새정치민주연합과 약간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정의당이 있다. 이들의 개혁이나 진보라야 독일 모델이나 더 나아가서는 스웨덴 모델을 따르고 있는 정도여서 큰 맥락에서는 오히려 온건하다고 해야만 맞을 것 같다. 그런데도 이들에 대하여 거대 보수언론 등 보수 측에서는 줄기차게 비난을 퍼붓거나 또는 중도화로 유도하는 교묘한 공세를 펴고 있다. 그래서 드디어 야당 안에서도 중도로 선회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다.”

지금 우리 사회의 서민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다. 개혁이 절실한 시대이다. 상층은 흥청거리지만 하층은 죽을 맛이다. 김낙년 교수의 통계에 의하면, 상위 1%가 전체 부의 26%를 소유한다(상위 10%는 전체 부의 66% 차지). 부익부 빈익빈은 심화일로다. 공평한 입장을 유지하려 하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최근에 언급한 것을 보자. “자살률이나 노인빈곤율, 최저임금 이하의 근로자 비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1위입니다.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입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비율은 세계에서 아주 높은 수준에 있고… 물질만능주의와 나아가 인명경시 풍조까지 만연해 있습니다. 공동체와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고 그저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 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마저 정부가 정책을 전환하여 증세·복지의 개혁정책을 채택할 것을 호소하지 않았는가. 그러다가 고생을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야당의 개혁정책이 오히려 미약하게 보였지 과격하다고는 결코 생각되지 않았다. 지난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공약한 것을 정리한 책 <1219 끝이 시작이다>를 다시 읽어보자. 매우 온건하고 오히려 과단성이 안 보인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그런데 그런 정책방향을 “낡은 진보”, “운동권적 사고” 운운하고 비난한다. 요즘 일부 종합편성채널에서 들을 수 있는 난폭한 언동과 유사하기까지 하다. 또한 지금은 야권의 추동력, 다이너미즘이 형편없이 부족한 실정인데 그나마 있는 다이너미즘을 매도하니 중도화 운운하고 김만 빼고 추동력은 어디서 찾을 것인가.

지난번 중도화에 관한 나의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정당들은 선거 때 중간·부동층을 흡수하기 위해 정책 선전에 있어 얼마간의 중도화를 시도한다.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예가 영국 토니 블레어의 경우인데, 블레어는 노동당의 본질을 건드린 것도 같다.

다만 기본 바탕인 정책대강이 확고히 있을 때의 선거 전략상 중도화이지 기본 바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중도화 운운은 헛다리를 짚는 이야기다. 그것은 개혁에서 보수로 슬그머니 옮기는 중간 기착지일 수가 있다. 그렇다. 개혁 노선이 아직도 애매하고 개혁의 추동력이 허약한 상태에서 중도화 운운하는 것은 틀림없이 보수화하자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그 과정에 커튼을 치는 격이다.

문재인 캠프가 되었든, 안철수 캠프가 되었든, 혹은 혹시 박원순 캠프가 되었든 개혁의 큰 줄기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서민들은 지금 바라고 있다. 아직 분명하게 의식화된 상태에서 표출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이 잠재되어 있는 깔린 하층민들(서양에서는 ‘언더도그’라고 함)의 분노이기도 하고 바람이기도 한 줄 안다. 확철부어(涸轍鮒漁,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라는 말이 있다.

한편 중도화에 경도된 흐름도 있는 것이 사실이고 보면 거기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혹시 김대중·노무현 두 개혁정권과 이명박·박근혜 두 보수정권을 경험하면서 양측에 냉담해진 층이 새로운 흐름을 형성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한 현명한 정치적 대응이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착잡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에 마침 1월14일 김종인 박사의 더불어민주당 영입이 발표되었다. 김 박사의 조부가 전북 순창 출신의 일제 때 ‘민족변호사’ 3인 중 한 사람이며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씨이니 여하튼 호남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고, 경제 전문가의 영입이기도 하지만, 그가 새누리당에서 큰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중도화 흐름과 어떤 타협 같기도 하다. 선거대책위원장이란 공천, 선거 전략 등 종합적인 역할을 하는 자리로 나는 그의 정책면 말고는 별로 말할 입장이 아니다. 입당하자마자의 그의 언행은 나를 약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주 오랜 지기이기도 한 김 박사는 다 알다시피 헌법 112조 2항의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을 입안했으며 경제학자 출신의 정치인이다. 그는 독일 유학파이기에 독일 정치경제에 정통하다. 그의 경제민주화는 한마디로 줄여 독일 모델이라 할 수 있겠다.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에 대단한 비중을 둔다. 기업이나 노동 등 사회구성층위에 ‘사회적’이란 공동체의 가치를 중요하게 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모델이 우리나라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고 발전될 것이냐는 앞으로 부딪힐 어려운 과제이다.

한쪽에서는 중도노선의 정책을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다른 쪽에서는 아마 경제민주화의 방향으로 정책 발전이 있을 것 같다. 경제 정책이란 생각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구체적인 경제 현실을 놓고서 여러 가지 모색이 있고 수정이 있는 등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다.

지금 분열되고 있는 야당 진영은 앞으로 총선거를 거쳐 대선을 앞두고는 결국은 다시 통합될 것으로 내다보인다. 그동안 서로 간에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골이 안 생겼으면 한다.

국민은 누가 집권하느냐는 구경거리에도 흥미가 있지만, 누가 진정 국민을 위한 개혁을 할 것인가 하는 실생활의 문제에 점차 더 관심을 쏟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지금 많은 분야에서 개혁을 하여야 할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