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재개발'과 '재건축'이라는 낭비(2016년 1월 23일)

divicom 2016. 1. 23. 12:02

요즘 저희 집에서 두어 블록 떨어진 서대문구 남가좌동과 북가좌동에서는 재개발과 재건축을 위한 철거가 한창입니다. 원래 철거작업을 할 때는 물을 열심히 뿌려가며 해야 먼지가 사방으로 퍼지는 걸 막을 수 있지만 제대로 물을 뿌려가며 철거하는 현장은 드뭅니다. 멀리서도 그곳을 보면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 하늘을 덮습니다. 어젠 보다 못해 서울시 120콜센터에 전화를 하고 말았습니다.

 

헐린 건물들 중엔 오래 되어 헐어야 하는 건물도 있었지만, 아직 한참 버틸 수 있는 건물들도 많습니다. 단독주택들과 다세대주택들, 작은 건물들이 늘어 서 있던 동네를 고층아파트 단지로 탈바꿈시키려 하는 계획이 시행되고 나면 가끔 탐험하듯 나서던 골목길 순례를 불가능하게 하는 획일적인 도시가 되겠지요. 골목마다 다른 이야기가 있던 동네에서 흔하디 흔한 아파트들이 비석처럼 모여 선 타운으로 바뀌는 겁니다. 이렇게, 지금 이 시각에도 서울에선 '획일적인 구조물들'을 위해 '다양한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어놓고 분양이 안 되어 비어 있는 아파트가 수만 호에 이르는 나라에서 왜 계속 아파트를 짓는 재개발을 하는 걸까요? 정책입안자들의 창의력 부재만큼 사회 풍조가 한몫을 하겠지요. 물건을 잘 만들어 오래 쓰고, 헌 것을 고쳐 쓰고 물려 쓰기보다, 새 것이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날로 낡아가는데 왜 이렇게 새 것을 좋아하는 걸까요? 아래 각 나라별 아파트 교체 수명 비교를 보니 부끄럽습니다. 마침 인터넷에서 재건축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가 실렸기에 옮겨둡니다. 한국일보 박관규 기자의 기사인데, 기사가 길어서 앞 뒤에서 몇 문단 덜어냈습니다. 기사 원문과 사진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media.daum.net/economic/estate/newsview?newsid=20160123110524369 

 

 

 

콘크리트 수명 100년.. 아파트는 30년?

재건축연한 40→30년 바뀐 뒤 곳곳 들썩.. 수명 탓인가 사업성 때문인가

재건축 연한 단축에, 부동산 경기 활황을 타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건축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올해 재건축 대상 물량만 13만5,000가구에 이른 상황입니다. 이미 건설사들은 재건축 수주전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고, 재건축이 본격화된 지역에선 비수기인 한겨울에도 전셋값이 요동치고 있습니다. 매년 재건축 물량은 급증해 2020년이면 현재보다 대상이 3배 이상 늘게 돼 전국이 재건축 폭탄으로 들썩일 전망입니다. 한국의 아파트는 100년을 버틴다는 철근 콘크리트를 기반으로 건설됐는데도 왜 유독 수명이 짧아 이런 난리를 겪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80년대 준공 단지 대부분 100년 주택인데도 허물어

재건축 대상 건축 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이 지난해 시행에 들어가면서 목동아파트 등 1986년에 건설된 아파트가 당장 올해부터 재건축 대상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앞으로 3년간 매년 쏟아지는 재건축 대상 물량만 12만~19만 가구에 이릅니다. 6년 후인 2022년 이후에는 이 보다 3배 많은 47만가구 이상 대상에 오릅니다.

연도별 재건축 물량(단위 : 만가구)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2023 2024 2025 2026 2027
전국 13.6 12.2 18.6 19.4 23.3 34.6 48.4 47.5 50.0 49.6 45.0 47.8
서울 3.9 3.7 8.6 3.6 2.9 5.8 8.0 6.9 6.3 6.4 6.2 7.4
준공연도 1986 1987 1988 1989 10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자료: 국토교통부>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최소 수명(60~100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연한인데도 이렇게 노후ㆍ불량 주택 대상으로 꼽히고 있는 셈이죠. 한국 아파트는 부실하게 건설돼 30년만 되면 바로 재건축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게 당연합니다. 실제 한국의 아파트 평균 교체 수명은 26.95년(2005년 기준)입니다. 선진국의 아파트 교체 기간인 54~128년과 비교하면 너무 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하죠. 1970년 준공된 지 석 달 만에 붕괴된 와우아파트처럼 부실시공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되는 모양새입니다. 이학주 SH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와우아파트 사고에, 1기 신도시 ‘바다모래 파동’이 잇따르다 보니 한국 건축물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이라며 “구조적 안전상 80년대 이후 지어진 대부분 단지는 관리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50년 이상 버틸 수 있게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재건축이 이뤄지는 것은 건물 수명만이 원인은 아니란 설명이죠.

◆주요 국가별 아파트 교체 수명(단위: 년, 괄호 안은 기준 연도)

한국 26.95(2005)
일본 54.24(2008)
미국 71.95(2003)
프랑스 80.23(2002)
독일 121.3(2002)
영국 128.04(2004)

<자료: 국토교통부>

결국 아파트 재개발은 항시 입주물량을 걱정하는 정부와 건설사, 입주민의 염원이 맞아 떨어져 이뤄진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됩니다. 보다 높은 건물을 지어 많은 사람이 이용하도록 하자는 땅에 대한 경제적 논리가 “사회적 자원 낭비를 초래한다”는 의견을 누른 셈이죠. 실제 30년 연한이 지난 아파트에 대한 최종 재건축 여부를 가리는 안전진단 기준은 ▦주차장, 배관, 층간소음, 에너지 효율성 등 주거환경 평가 ▦구조 안전성 결함 ▦건축 마감 및 설비 노후도 ▦비용분석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바로 무너질 것만 같은 아파트만 재건축 대상이 되는 게 아닌 셈이죠.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구조안전 제고와 함께 주거환경 중심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꼭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건축물만 재건축 요건인 D, E등급을 받는 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준공된 지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안전진단의 40%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환경 평가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기에, 사업성만 확보된다면 재건축이 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