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칼럼이란 어떤 글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저는 좋은 칼럼이란 '새로운 정보를 주고(informative)' '깨달음을 주고(enlightening)' '재미있는(entertaining)'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니고 언젠가 누구에게서 들은 것입니다.
이 세 가지 기준에 비추어 요즘 매스콤이나 인터넷 바다를 떠도는 글을 보면, 좋은 칼럼 찾기가 참 힘듭니다. 재미있으면 가볍고, 정보를 주면 얕아서 깨달음을 주지 못하는 글이 대다수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김수종 선배의 칼럼은 예나 지금이나 참 좋은 칼럼입니다. 이 나라에 갇히어 남극을 잊고 사시던 분들이 아래 글을 읽고 생각의 지평을 넓히면 좋겠습니다.
| | | | | 얼음 대륙에 풍운이 몰려온다 | 2016.01.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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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정교회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중국 노동자들이 장성역참(長城驛站)을 확대하여 배드민턴 코트, 150명 규모 숙소, 위성기지 보호 돔을 새로 꾸몄습니다. 인도는 134개의 화물 컨테이너를 붙여서 미래형 연구센터를 멋지게 지었습니다. 터키와 이란이 기지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위의 글은 전혀 연결이 안 되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에 딱 한 단어, 즉 ‘남극’을 넣으면 뜻이 한순간에 확연해집니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남극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지 건설에 달려드는 동양권 국가들의 활동을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 국제사회의 세력 판도 변화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지난 세기 남극은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영미권 국가와, 그리고 남극에 연고가 깊은 러시아, 아르헨티나를 제외하면 관심 밖의 대륙이었습니다. 남극에 기지를 운영할 능력도 없었고 절박한 필요성도 못 느꼈던 것입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경제력 지도가 달라지면서 남극 얼음 땅의 판도에도 큰 변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영미권 국가가 예산 등의 이유로 기지 활동이 정체 상태인 반면 중국과 인도 등 동양권 국가들이 열심히 기지와 연구센터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대열에는 1988년 세종기지의 문을 연 한국도 들어 있습니다. 현재 남극대륙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약 4,000명의 과학자들이 연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남극은 사계절이 뚜렷한 북반구에 사는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정말 신비한 대륙인 게 분명합니다. 거의 2,000미터 두께의 만년설에 덮여 있는 남극대륙은 공식적인 면적이 1,400만 평방킬로미터이니 중국, 인도, 남북한, 일본, 베트남을 합친 크기입니다. 그러나 겨울 동안에는 남빙양이 얼어붙어 남극대륙을 덮은 빙판은 두 배로 늘어납니다. 남극 연구가들도 이런 극심한 변화에서 육지와 바다를 어떻게 구분 지을 것인지 연구 분야마다 개념 세우기에 혼란스러워합니다.
200년 전만 해도 인간은 남극 대륙을 본 적이 없습니다. 기원전 350년 아리스토텔레스가 불, 물, 공기, 땅을 다룬 저서 '기상학‘(Meteorology)에서 처음 남극에 대한 언급을 했지만 막연한 상상일 뿐 신화의 영역이었습니다. 중세까지도 사람들은 이 신화의 땅을 그냥 ‘남쪽 땅’(Terra Australis)이라고 불렀습니다. 해양탐험이 왕성했던 1819년 제정 러시아 해군은 독일인 해양탐험가 파비안 벨링샤우젠을 총대장으로 삼은 남빙양 탐험선단 2척을 파견했습니다. 900톤급의 탐험선 보스토그(Vostok)호에 승선한 벨링샤우젠 선장은 1820년 남반구의 여름인 1월28일 바다로 드리워진 남극대륙의 빙붕(氷棚)을 처음 목격했습니다. 남극점을 밟은 것은 그로부터 91년 후인 1911년 노르웨이 탐험가 로알 아문젠이었습니다.
남극은 발견된 이후 150여 년 동안 탐험가의 도전 대상으로 매력이 있었을 뿐 혹한의 기상과 문명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접근성 문제로 큰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남극은 탐험의 대상에서 지구과학, 위성정보, 지하자원, 해양자원 연구의 대상으로 미국 등 초기 남극탐험 국가들의 관심을 끌었고 지금은 같은 이유로 중국과 인도 등 부상하는 경제 대국들이 남극으로 몰려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근래 남극은 일반 관광객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여름을 이용한 남극 방문자 수는 매년 5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남미, 아프리카, 시베리아까지 진출하는 한국 관광객이 남극 구경을 하겠다고 달려갈 날도 멀지 않아 보입니다.
남극대륙은 임자가 없는 땅입니다. 많은 국가가 세운 남극 기지도 땅임자가 없는 일종의 콘도미니엄 분양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남극이 임자가 없는 땅으로 변한 것은 1959년 미국을 위시해서 남극에 기지를 세운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호주, 칠레, 러시아, 벨기에, 일본 등 12개국이 참여하여 남극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영토분쟁의 소지를 없앴기 때문입니다.
남극조약은 일종의 신사협정입니다. 조약체결 후 중국과 한국 등이 참가해서 남극조약 당사국으로 서명한 나라는 46개국으로 늘어났습니다. 조약은 어느 나라에도 남극 대륙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인류의 마지막 보고(寶庫)로 보전하기 위해 핵실험을 포함한 군사행동의 금지와 광물 자원 채굴 금지를 규정하는 한편 과학적 연구를 지원하고 생태 환경을 보존하도록 했습니다. 작은 바위섬 하나를 놓고도 영유권 다툼이 살벌한 국제정세 아래서 남극조약은 신기하게 잘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술의 발달과 지구 자원의 고갈이 심해지자 남극의 매력이 점점 부각되면서 적지 않은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력이 커진 중국이 남극에 기울이는 관심은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1985년 첫 기지를 건설한 중국은 이미 4개의 기지를 운영 중이며, 최근 5번째 과학기지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말뚝을 하나하나 늘려나가는 형국입니다. 남극의 장성역참을 확대한 것은 이곳이 전 기지를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로서 앞으로 더 많은 중국 과학자를 파견하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은 2014년 가을 호주의 타스매니아 섬을 방문했을 때 중국 과학자를 태우고 남극으로 가다 이 섬에 기항한 중국 쇄빙선 선상에 올라 "아직 인류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중국의 영역을 확장해 나갈 것"이라고 연설했습니다.
남극은 21세기 중국이 절대 부족한 석유, 식량(크릴새우),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특히 남극은 중국이 가장 절실한 수자원, 즉 빙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국은 최근 '극지연구소'의 조직을 확대하고 자원, 관련법, 지정학, 남북극 거버넌스에 대한 통합적 연구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주인 없는 땅에 돈만 있으면 과학기지를 얼마든지 세울 수 있습니다. 반면, 기존의 남극조약 체제를 지켜오던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불편합니다. 불안 요소 중 가장 큰 것이 남극조약입니다. 남극조약은 2048년 만료됩니다. 그 때 세계는 어떻게 변하고 남극조약체제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중국은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때 가서 중국이 미국보다 더 강대해지고 자원에 갈증을 느끼는 상황이 된다면 지하자원 채굴을 금지한 현 남극조약을 놓고 과연 가만히 있을까요.
기후변화로 남극 대륙에 쌓인 만년설이 다 녹는다면 전 세계 바다 수위를 65미터 이상 높일 수 있습니다. 21세기 어느 시점에서 이 거대한 얼음 땅이 몸부림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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