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김수행 교수 별세(2015년 8월 3일)

divicom 2015. 8. 3. 09:52

나라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는 시점에서, 중요한 정치경제학자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 중 한 사람인 김수행 교수가 별세했습니다. 김 교수는 지난 1일 새벽 미국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합니다. 


김 교수가 서울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강의하다 정년퇴임한 후 서울대 경제학부엔 그의 뒤를 잇는 교수가 없습니다. 국립 서울대의 학문적 편협을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겨우 73세에 떠나신 김 교수님,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아래에 오늘 한겨레신문에 실린 김 교수 기사 일부를 옮겨둡니다. 전문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702742.html 



한국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장)가 1일 오전 1시30분(현지시각 7월31일 오전 10시30분) 별세했다. 향년 73.


한국사회경제학회는 김 교수가 미국에 자녀를 만나러 갔다가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2일 밝혔다. 사인은 심장마비. 장례는 3일 오후 3시 미국 유타주 모아브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서울대 정년퇴직을 앞두고 2007년 학교 연구실 앞 벤치에 앉아 소회를 밝히던 모습. 그는 퇴임 뒤에도 왕성한 연구와 활동을 펼쳤다. 김경호 선임기자 <A href="mailto:jijae@hani.co.kr">jijae@hani.co.kr</A>,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대 정년퇴직을 앞두고 2007년 학교 연구실 앞 벤치에 앉아 소회를 밝히던 모습. 그는 퇴임 뒤에도 왕성한 연구와 활동을 펼쳤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마르크스 ‘자본론’ 국내 첫 완역

서울대 최초 ‘마르크스 전공’ 교수
국내 비주류 경제학 연구 물꼬 터
어린이·일반인 위한 저술도 활발

자녀 보러 미국 갔다가 심장마비
오늘 가족장… 학계 “고인 뜻 이어야”
최근까지 ‘자본론’ 개역작업 몰두


김 교수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국내 처음 완역한 것으로 유명하다. 1980년대까지 금서목록 맨 윗자리를 차지했던 <자본론>(비봉)을 1989년부터 1990년까지 완역했고, 최근까지도 <자본론> 전면개역 작업에 몰두해왔다. 비봉출판사 박기봉 대표는 “<자본론> 전 5권을 완전히 고쳐 평소 지론이 그랬듯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손봐서 곧 인쇄에 들어갈 예정이었다”며 “표지 디자인까지 시안 중 한가지를 낙점하고 미국으로 떠났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고 말했다.


학문적 삶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1942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1982년 런던대에서 마르크스 공황론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한신대 무역학과 교수로 임용된 뒤 정운영 교수(작고)와 함께 윤소영·강남훈 교수를 영입하고 경제과학연구소를 만들어 제도권 마르크스주의경제학 교육과 연구의 물꼬를 텄다. 학내 민주화 투쟁을 빌미로 1987년 해임된 뒤 1989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부임했다. 2008년 퇴임 뒤에는 성공회대 석좌교수로서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써왔다.


그의 서울대 채용을 둘러싸고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제도화의 상징적인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1988년 4월 서울대 대학원 경제학과 자치회는 전공교수 자리에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전공자를 교수로 영입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대 안에서는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 교수들로 차 있었고, 학생들은 교수 면담, 수업 거부, 집회와 농성을 통해 학교 쪽을 압박했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신정완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전공자를 뽑는다면 김 교수님이 가장 유력한 상황이었고 그분을 모셔오고 싶어서 대학원생 상당수가 집회에 참여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