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일본대사관 앞 노인 분신(2015년 8월 12일)

divicom 2015. 8. 12. 17:55

오늘 낮 1240분경 여든한 살 최현열 씨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분신했습니다. 오늘 수요집회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814)을 맞아 개최했습니다.

 

여러 매체가 보도한 사건 경위를 정리해 보면, 최 선생님은 일본군 종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파렴치한 태도를 바꾸지 않는 일본 정부를 규탄하기 위해 분신을 시도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여든을 넘기신 분이 노년을 편히 보내시는 대신 스스로를 비판과 각성의 도구로 내놓으셨으니 인생 후배로서 송구하고 부끄럽습니다.

 

최 선생님은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고 계시지만 심한 화상으로 생사를 말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에 거주하는 최 선생님은 오늘 수요모임에 참가하기 위해 광주에서 상경했으며, 광주의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후원자로 조용히 활동하시던 분이라 시민모임 관계자들도 오늘 사건을 접하고 매우 놀랐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분신 직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한 문서가 든 가방을 수요 집회 주최 측에 던지셨다고 합니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선생님의 부친은 항일독립운동에 참여한 최병수 씨(작고)이며, 19326월 조선 독립 쟁취를 목적으로 한 영암 영보 농민 독립만세 시위 사건에 참여해 치안유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1년 형이 선고됐으나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뉴스1은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관계자를 인용해, 최 선생님의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는 해방 후 좌익 운동과 관련된 부분이 있어서라고 보도했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여든을 넘긴 노인이 사회적, 국제적 정의의 실현을 위해 자신을 불사른 예는 보기 힘듭니다

노년엔 깨어 있기도 힘든데 행동까지 하기는 더 힘드니까요. 그렇게 드문 사건이 이 나라에서 일어났지만

다음네이버등 포털사이트에서는 이 사건을 별로 크게 다루지 않고, 소위 조중동의 인터넷판 첫 화면에서도 이 사건을 찾아보긴 힘듭니다. 바로 이런 태도 때문에 일본이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것이겠지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노화의 속도가 빠르지만,  공적 정의의 실현보다는 개인적 안녕 추구에 바쁜 노인이 

많은 한국에서 최 선생님이 얼마나 외롭게 살아오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외로움으로 더욱 단단해지셨을 

최 선생님에게서 스스로를 던져 일본에 맞섰던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오늘 한국일보는 생존하고 있는 독립운동가와 그의 후손 1115명을 대상으로 생활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5.2%가 월 소득 200만원 미만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100만 원 이상 200만원 미만이 43.0%, 

50만 원 이상 100만원 미만이 20.9%, 50만원 미만도 10.3%나 되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비해 친일파의 후손들은 명문대를 졸업한 고학력자로 부를 대물림하고 있다는 게 뉴스타파의 보도입니다. 뉴스타파는 자체적으로 친일후손 1177명을 조사한 결과 3분의 1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인 것으로 확인됐고, 27%는 명문대를 졸업한 뒤 해외 유수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친일파의 후손들 가운데 346명은 국적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조사 대상 중 기업인은 376(32%), 대학교수가 191, 의사가 147명이었으며, 정치인과 공직자, 법조인, 언론인 등 소위 파워엘리트 그룹은 163명이었다고 합니다. 이 보도를 보니 왜 한국 사회가 지금과 같은 꼬락서니가 되었는지, 왜 최현열 선생님이 여든한 살에 분신을 하실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