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메르스와 박 대통령(2015년 6월 6일)

divicom 2015. 6. 6. 10:57

오늘은 현충일, 조기를 걸며 나라를 생각합니다. 세계지도에서 찾아보면 작디작은 나라, 우여곡절 끝에 경제력으로 세계 10위권에 드는 나라가 되었지만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는 아직 후진국이며 사상누각입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를 대하는 태도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중동을 다녀온 60대 남성이 환자로 확인되었을 때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기만 했다면 지금과 같은 유사 공황사태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전 국민이 알게 된 용어 골든 타임은 메르스 사태에도 적용되는 것이지요. 정부가 초기에 

잘못 대응했다며 정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정부의 한계는 일찍부터 예견된 것입니다. 그러니 보이는 

잘못은 정부가 저지르지만 보이지 않는 잘못은 이 정부의 탄생을 초래한 유권자들이 저지른 것입니다.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나라를 끝없는 사건의 소용돌이에 빠뜨린 것이지요.

 

박근혜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박 대통령도 난감할 겁니다. 정말 나라를 사랑하여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데 왜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어제 메르스 발발 16일 만에 노란 점퍼를 

입고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한 박 대통령을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중앙의료원이 막 메르스 전용 병원으로 지정되어 입원해 있던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보내지고 메르스 확진 환자들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시점에서 그 병원을 찾아 의료진을 격려하는 모습, 그 와중에 지자체나 관련 기관이 

독자적으로 이것(메르스)을 해결하려고 할 경우에 혼란을 초래할 뿐 아니라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여 전날 밤 박원순 서울시장이 발표한 메르스 대처방안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나라는 이미 혼란에 빠졌고 효과적 대응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는데, 그는 뭐 하러 그 병원에 가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침통한 얼굴로 텔레비전에 나와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와 정부가 초기에 잘못 판단하여 지금과 같은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의 지자체와 힘을 합해 이 사태를 진정시키고 메르스 진압에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라고 하면 되었을 것을.

 

박 대통령이 측은한 것은 그가 돌발적인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하다니 나쁜 사람'이라고 그를 비난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모르는' 사람입니다. 삶은 예견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여정이고 그 길을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겪으며 대처 능력을 키우게 되지만, 오랫동안 '예측 가능한 삶'을 산 그에겐 그런 능력을 키울 시간이 없었습니다. 


1952년생인 박 대통령은 1961년 아버지의 쿠데타로 영애가 되어 197910월 아버지가 최측근의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청와대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타계하기 5년 전 광복절엔 어머니도 총탄에 잃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울타리 안의 삶을 살다가 20대에 그 강력한 울타리를 잃은 겁니다.

 

스물두 살... 총탄에 어머니를 잃었을 때 그가 아버지 옆에서 영부인노릇을 하는 대신 실력 있는 정신과 의사나 

청정한 수도자를 만나 정신에 입은 상처를 치료했더라면, 스물일곱 살 때 아버지가 오른팔 같던 사람의 손에 저 

세상 사람이 된 후 정치인들과 인연을 끊고 그들이 없는 곳에서 피투성이 된 영혼을 치유했더라면... 그랬다면 그도 지금 같지 않고 이 나라도 지금 같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권력과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꾼들은 그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불귀의 객이 된 그의 아버지와 그를 선거에 이용했고, 그는 그렇게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사고로 끝날 수 있었던 세월호의 침몰이 수많은 ‘...했더라면을 거쳐 사건이 된 것처럼, 그에게 일어난 ‘...했더라면이 그의 인생과 이 나라를 상처투성이로 만든 것이지요.

 

영어에 ‘Better late than never’라는 말이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지금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치료받기 바랍니다. 비상식적 삶이 초래한 괴로움과 외로움에서 해방되는 날, 그의 눈엔 자신에게 타인의 삶을 강요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꾼들이 보일 겁니다. 그가 그들을 내치고, 제 이익보다 국민의 삶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기용하면 이 나라에도 상식이 돌아오고, 늦게나마 서서히 이 나라가 경제력에 맞는 정신을 회복하게 되겠지요. 그 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