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인한 사망자와 감염자의 수가 늘어나자 2003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시 중국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으로 인해 전 세계에서 8천여 명이 감염되어 810명이 사망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3명의 환자가 나오는 데 그쳤고, 세계보건기구는 한국을 ‘사스 예방 모범국’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메르스로 인한 피해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국가입니다. 발원지인 중동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메르스가 왜 유독 한국에서만 맹위를 떨치며 나라 전체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지, 한국을 연구하는 외국인들과 외국 기관들도 적지 않습니다. 초기 단계에서 정부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초래되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전염병에 대처하는 정부의 능력이 12년 전보다 후퇴했다는 말도 나옵니다. 오늘 한겨레신문 기사를 보면, 2003년 참여정부가 사스에 대처하던 방식은 지금 정부가 메르스를 대하는 태도와는 아주 많이 달랐습니다.
참여정부는 국내에서 사스 환자가 확인되기 전, 중국 광둥성을 중심으로 사스가 퍼지자 전국에 사스 방역 강화지침을 내리고 총리실 산하에 종합상황실을 설치했으며, 총리가 직접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국방부 등 관련 부처에도 지원을 요청해 군의관과 군 간호인력까지 현장에 투입했다고 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5월 20일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온 뒤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의 양병국 본부장 지휘 아래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대책본부)를 두었다가, 감염이 확산되자 28일에 책임자를 장옥주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격상시켰으며, 이달 초 메르스 발생 2주 만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3일 성명을 내어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장을 보건복지부 차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격상시킨 것은 생색내기일 뿐 안이하고 무책임한 대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2003년 4월 고건 당시 총리는 사스에 대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만약 여러분이 환자나 유사환자라면 여러분의 불찰이 사랑하는 가족을 바로 전염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호소하고, 정부는 사스 의심 환자를 10일간 격리할 수 있도록 조처할 테니 필요시 지체 없이 동의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메르스 예방에는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는 걸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데, 문형표 장관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메르스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 “감염경로가 의료기관 내에 국한되어 있어 관리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같은 날 세계보건기구는 “최초 발생자가 들른 의료기관의 수를 볼 때 감염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니 참으로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메르스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사스를 대하던 참여정부의 태도와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당연히 국민에게 알려야 할 정보 --확진 환자 발생 지역과 병원, 환자 수용 병원 등--를 공개하지 않아 두려움과 소문을 키우면서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엄벌하겠다’고 국민을 겁주는 현 정부와,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대명제를 잊지 않았던 참여정부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정부든 국민이든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려면 우선 제 할 일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메르스 사태를 세월호 사건의 판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식의 상황은 얼마든지 되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정부만 욕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정부는 쿠데타로 세운 정부가 아니고 선거에 의해 당선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정부이니까요. 결국은 이 모든 게 투표권을 잘못 행사한 국민의 탓, 천지분간 못하는 사람에게도 한 표 찍을 권리를 주는 민주주의의 생래적 결함 때문이니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그저 노무현 전 대통령, 그분이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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