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4대 강을 망친 정부가 섬진강까지 위협하는 개발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해왔다고 합니다. 21세기로 접어든 지 15년이 되었지만 20세기 식 ‘개발’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눈엔 시간의 흐름이 보이지 않나 봅니다.
오늘 경향신문이 단독 보도한 것을 보면, 섬진강을 포함한 5대강 주변이 개발되어 온갖 위락시설이 들어설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강변에 농구장, 낚시터, 경량항공기 이착륙장, 자동차 경주장, 미술관, 공연장, 골프장, 오토캠핑장, 휴게음식점, 유람선 선착장 등 주거시설을 뺀 다양한 용도의 시설을 지을 수 있다고 하니 ‘강(江)’이 죽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강’이 죽으면 강 덕에 태어나던 ‘시(詩)’도 태어나지 못하겠지요.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 시가 태어나지 못하는 나라... 정부가 앞장서서 이 나라를 ‘불임 국가’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의 문제는 놀 곳이 없는 게 아니라 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인데, 국민의 마음을 편히 하는 정책을 연구해 내놓기는커녕 놀 곳을 늘리기 위해 자연을 해치겠다고 하는 겁니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나 21세기 경제는 자연과 문화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경제!’를 외치는 정부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착오적인 계획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낸 보고서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이 연구원이 2013년 7월 국토교통부의 용역을 받아 ‘국가하천 하천구역 지구지정 기준 및 이용보전 계획 수립’ 최종 보고서를 작년 12월에 제출했으며, 이 보고서에 의하면 개발 가능지역인 친수지구가 현재의 8595만6309㎡(24.25%)에서 2억697만2692㎡(49.14%)로 확대된다고 합니다.
이 보고서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이미경 의원이 입수해 공개했는데, 낙동강 친수지구는 현재 24.32%에서 47.59%로 늘고, 금강 친수지구는 8.24%에서 32.64%로 4배나 늘어나며, 4대강 사업에서 제외돼 대규모 준설이나 보의 건설이 없었던 섬진강의 친수지구도 1.44%에서 63.25%로 대폭 늘어나 습지와 모래톱이 크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합니다.
이 의원은 이 개발 계획에 비추어 보면 ‘4대강 사업은 사전 정지작업 수준’으로 느껴질 정도라며 이것이 실현될 경우 ‘단군 이래 최대의 난개발이 전국 천변에서 벌어질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어리석은 계획이 내년 총선에서 어떤 힘을 발휘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픕니다.
정부는 저출산을 걱정하고 ‘경제’를 걱정하지만, 국민의 마음이 평화롭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면 낳지 말라고 해도 아이를 낳고, 창의력을 발휘해 경제를 살릴 겁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이 강변이나 숲속을 거닐며 마음의 평화를 회복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강변을 놀이터로 만들고 숲에 케이블카를 놓는 것이 아닙니다. 외국 관광객을 유치해 관광수입을 늘리겠다는 갸륵한 생각을 한 건지 모르지만 요즘은 관광객들도 놀기보다는 ‘쉬러’ 옵니다.
국민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려면 세금을 제대로 걷어 빈부격차를 줄이고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매운 벌을 주어야 합니다. 정직한 사람은 손해보고 잔머리를 쓰는 사람들과 철면피한 사람들이 호의호식하는 나라에서, 아기를 낳으면 보조금을 주고 강변에 위락시설을 짓는다고 누가 행복하겠습니까? 신동엽 시인의 시 ‘금강’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제9장’에서 인용.)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인가,
눈을 뜨지 못한 짐승,
그렇다,
우리 주위엔 얼마나 많은
눈 뜨지 못한 짐승들이
사람 탈을 쓰고
밀려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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