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강인한 동행 한 사람을 잃었습니다. 우고 차베스(58)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5일(이하 현지시간) 오후 이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14년 동안 집권한 차베스 대통령은 최근 2년 동안 암 치료를 받아왔다고 합니다.
그의 타계 소식을 접한 각국의 반응이 다르듯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 또한 다를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매운 '강한' 인간이며 지도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줄곧 반미의 선봉에 서서 미국을 곤경에 빠뜨려온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1954년 7월 28일 베네수엘라 남부 농촌 마을 사바네타에서 태어난 차베스는 소년 시절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던 야구선수였으나 17세에 군인이 되었고, 남미의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사상에 심취하여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1992년 휘하 병력을 이끌고 쿠데타를 시도, 실패했으나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1994년 사면되었고 1998년 대통령선거에서 이겨 이듬해 44세의 나이로 베네수엘라 최연소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2000년 재선된 차베스는 2002년 쿠데타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가 살아남았는데, 그는 당시 미국을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했다고 합니다.
그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국제유가 상승에 힘입어 넉넉해진 재정을 바탕으로 집권 초기 50퍼센트를 넘나들던 실업률을 2011년엔 32퍼센트까지 끌어내렸으나, 강력한 권력 행사와 반대파 탄압으로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이란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유엔 총회 연설에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악마'라고 비난하여 외교적 자주를 꾀했다는 평과 고립을 초래했다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고, 베네수엘라 국내에서도 빈민의 구제자라는 칭송과 독재자라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그의 행보가 그러했으니 그에 대한 평가 또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별세라는 어려운 시기에 미국은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한 지지와 베네수엘라 정부와의 건설적 관계 발전에 대한 관심을 재확인한다... 베네수엘라 역사에 새 장이 시작된다"는 짧은 성명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단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위대한 남미인'이며 '브라질의 친구'인 차베스 대통령의 서거는 '회복될 수 없는 손실'이라고 안타까워하며 1분간 묵념했다고 합니다. 평소 차베스를 '형제'라 불러온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차베스는 그 어느때보다 생생하게 살아있다"며, 차베스는 앞으로도 해방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의 귀감이 될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기자회견 도중 차베스의 타계 소식을 듣고 그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서 기여했다며 "유가족과 베네수엘라인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차베스의 서거를 '비극'이라 표현하며, 그는 "베네수엘라와 남미, 그리고 전 세계에서도 위대한 정치인으로서 활동했고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간 관계 개선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애도했으며,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교장관은 성명을 통해 차베스는 재임 14년간 베네수엘라와 더 넓은 지역에 오래 지속되는 인상을 남겼다며 '슬프다'고 했다고 합니다.
하루에 40잔을 마신 적이 있을 정도로 커피를 좋아했다는 차베스 대통령, 그의 안식을 기원하며 베네주엘라 국민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위치한 주한 베네수엘라대사관은 차베스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오늘부터 3월11일까지 영사 업무를 중단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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