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 11

아, 최재형! (2021년 6월 30일)

유월의 끝에 서서 지나간 시간과 그 시간 속 사람들과 사건들을 돌이켜 보니 안타까운 일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안타까운 건 감사원장이던 최재형 (崔在亨) 씨가 대통령을 꿈꾸며 감사원장직에서 사직한 겁니다. 그의 이름은 국문뿐만 아니라 한자 표기까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함자와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통령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감사원장 직을 내려놓다니... 그는 최재형 선생과는 이름만 같은 몽상가인가 봅니다. 거대한 부를 축적하여 항일 독립운동에 바치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도우신 최재형 선생님 (최 표트르 세묘노비치: Цой Пётр Семёнович)... 그분의 희생은 우리의 부끄러움으로 남았는데, 전 감사원장 최재형 씨는 스스로 부끄러움이 되었습니다. 이름..

오늘의 문장 2021.06.30

어제 읽은 시: 도연명의 귀거래사 (2021년 6월 28일)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는데 어찌 아니 돌아가리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껏 스스로 마음을 육신의 노예로 부렸으니 奚惆悵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홀로 슬퍼하여 서러워하는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이미 깨달았으니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일은 바르게 할 수 있음도 알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 그리 멀지 않으니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잘못된 지난 일들 이제부터 바르게 하리 舟遙遙以輕颺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고..

오늘의 문장 2021.06.28

이준석 현상 (2021년 6월 25일)

6.25전쟁 발발 71주년... 이 나라의 지난날을 생각합니다. 휴전이래 지금처럼 나라가 부유했던 적은 없습니다. 경제력으로는 세계 10위권을 오르내리는데 생각의 수준,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걸맞은 수준일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국 정당 역사상 최연소 대표가 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어떤 목사는 그에게서 '젖비린내'가 난다고 했다는데 이 대표의 나이를 문제삼는 사람들은 대개 꼰대들입니다. 이 대표에 대해 쓰여진 무수한 글들 중에서 아래의 글을 고른 이유는 무엇보다 필자가 사안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때문인데, 또 한 가지 반가운 건 존댓말 문체입니다. 저도 전에 한국일보와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할 때 존댓말을 썼습니다. 세상읽기 이준석에게 ‘딱지’ 붙이는 정치가 위험한..

동행 2021.06.25

노년일기 80: 김흥숙 전화번호 (2021년 6월 23일)

자고 나니 유명해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런 경험은 해 보지 못했고 자고 나니 전화번호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지금껏 011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사용했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들이 '혹시' 하고 011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가 연결되어 기뻐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 제 전화번호의 '자동 변경'이 완료되었다는 문자를 받으니 제일 먼저 염려가 됩니다. 누군가 오랜만에 전화했다가 당황하지나 않을지... 연말까지는 전화번호 변경 안내를 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누군가 당황하여 인터넷에서 제 번호를 찾을까봐 이 글의 제목에 제 이름을 넣었습니다. 제 번호는 앞자리만 010으로 바뀌었을 뿐 뒷자리는 그대로입니다. 상황, 환경, 조건 등의 변화는 대개 인간 관계..

나의 이야기 2021.06.23

오늘 읽은 시: 의자와 참외 (2021년 6월 19일)

지난 며칠 사소한 글자들을 다루느라 정작 시는 읽지 못했습니다. 시를 읽지 못한 날들이 이어지면 바닷물을 마신 사람처럼 목이 마릅니다. 목마름 때문일까요? 허만하 시인의 를 집어듭니다. 의자와 참외 마지막 교가처럼 비어 있는 방에 의자가 들어온다. 대합 실 지루한 시간같이 의자 위에 다시 의자가 얹힌다. 풀잎같 이 엷은 소학생 엉덩이 마지막 무게를 받치던 의자가 모로 누운 다른 의자의 무관심 위에 얹힌다. 쌓인 의자는 교실 벽 에 기대어 벌써 위험하다. 출격을 앞둔 병사들처럼 트럭을 기다리고 있는 조그마한 의자들. 폐교 하루 전의 교실보다 쌓인 의자가 고요한 것은 균형의 목표가 붕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 한 사람 격렬한 소모를 예감할 뿐 어디에 실려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름을 잃어버린 빈 학교..

오늘의 문장 2021.06.19

익숙함이라는 적 (2021년 6월 16일)

거리가 좀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지켜지는 예의가 낯익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일이 흔합니다. 처음 해보는 일을 할 때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하지만 익숙한 일을 할 때는 건성으로 하다가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 관계, 환경...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편해지면 조심하지 않아 사고가 나고 뒷걸음질 치기 쉽습니다. 2021년 여름은 제가 살아온 여러 해 중에 가장 편하고 편리한 해,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무례하고 시끄럽고 건성으로 가득한 해. 그래서 아래 글이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송혁기의 책상물림 익숙함을 경계하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조선 후기 문인 홍길주가 오랜 지인인 상득용에게 축하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축하하는 이유가 이상하다. 상득용이 말에서 떨어진 일을 축하..

오늘의 문장 2021.06.16

보고 싶은 아버지 (2021년 6월 14일)

2015년 9월 이곳을 떠나가신 아버지 제 첫 스승이고 친구이신 아버지... 아버지 떠나시고 단 하루도 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오늘도 아버지의 자유와 평안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 보고 싶은 아버지...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일러스트포잇 (illust-poet) 김수자 씨의 블로그 '시시(詩詩)한 그림일기'로 연결됩니다. 맨 아래 글은 김수자 씨의 글입니다. 시 한편 그림 한장 나비 - 정호승 illustpoet ・ 2017. 9. 23. 21:12 URL 복사 이웃추가 캔버스에 아크릴릭 나비 정호승 누구의 상장(喪章)인가 누구의 상여가 길 떠나는가 나비 한 마리가 태백산맥을 넘는다 속초 앞바다 삼각파도 끝에 앉은 나비 아버지, 직접 뵐 수 없는 곳으로 떠나신지 2년 입니다. 어제 ..

나의 이야기 2021.06.14

유상철: 위대한 선수, 위대한 인간 (2021년 6월 9일)

지난 7일 우리는 위대한 동행 유상철 선수를 잃었습니다. 그가 위대한 것은 뛰어난 축구 선수이고 감독이어서만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의 눈만 가지고도 훌륭한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암에 시달리면서도 투지를 잃지 않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로 하여금 축구 경기 생중계를 보게 했던 유상철 선수... 당신은 참으로 위대한 인간, 멋있는 남자였습니다. 삼가 명복을 비오며 시 한 편 올립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4077758 선수 유상철을 기억하는 두 가지 키워드 ‘멀티’ ‘투쟁심’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축구에서 ‘멀티 플레이어’라는 개념은 낯설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는 빈틈이 날 때 공격에 가담하기 위..

동행 2021.06.09

근조 명지대 앞 가로수 (2021년 6월 7일)

며칠 전 명지대 정문 앞을 지나다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 십 년 자란 플라타너스들이 온데간데없고 밑둥만 남아 있었습니다. 나무도, 집도, 사람도, 아름답게 자라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만 사라짐은 순간입니다. 그 나무들과 함께 2차선 도로의 운치도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던 긴 그늘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도대체 누가, 왜, 그 나무들을 베어 버린 걸까요? 혹시 그 나무들의 무성한 잎과 가지로 인해 명지대 캠퍼스에 짓고 있는 편의시설인지 상업시설이 가려지기 때문일까요? 제가 용서하거나 미워해야 할 사람, 아니 저주해야 할 사람은 어디에 있는 누구일까요? 명지대? 서대문구청? 서울시? 그것을 알고 싶어 '120다산콜센터'에 전화했지만 통화량이 많으니 나중에 다시 걸라는 기계음만 들었습니다. 그 나무들이 도저히 ..

동행 2021.06.07

노년 일기 79: 노인의 기도 2 (2021년 6월 4일)

살아오며 잘못한 일들을 기억하며 참회할 때까지만 살게 하시고 평생 잘못한 일 없다고 생각하기 전에 죽게 하소서 준 것은 큰 것도 기억 못하고 받은 것은 작은 것도 기억할 때까지만 살게 하시고 관계가 어그러진 건 모두 상대의 탓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죽게 하소서 살아있는 내내 불편하게 하시고 편해지는 순간 괴사가 시작됨을 알게 하소서 남아있는 친구가 있음을 감사하게 하시고 외로움만이 침묵으로, 침묵만이 진리로 가는 길임을 깨닫게 하소서

나의 이야기 2021.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