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아, 최재형! (2021년 6월 30일)

divicom 2021. 6. 30. 11:36

유월의 끝에 서서 지나간 시간과 그 시간 속 사람들과 사건들을

돌이켜 보니 안타까운 일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안타까운 건 감사원장이던 최재형 (崔在亨) 씨가

대통령을 꿈꾸며 감사원장직에서 사직한 겁니다.

 

그의 이름은 국문뿐만 아니라 한자 표기까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함자와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대통령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감사원장 직을 내려놓다니...

그는 최재형 선생과는 이름만 같은 몽상가인가 봅니다.

 

거대한 부를 축적하여 항일 독립운동에 바치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도우신 최재형 선생님 (최 표트르 세묘노비치: Цой Пётр Семёнович)...

그분의 희생은 우리의 부끄러움으로 남았는데, 전 감사원장

최재형 씨는 스스로 부끄러움이 되었습니다.

 

이름값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6월 28일 아침 출근길에

사퇴 의사를 밝히는 최재형 씨의 얼굴을 가린 마스크, 그 마스크

한 귀퉁이의 태극기가 뜻하는 건 무엇일까요? 설마 태극기부대는

아니겠지요?

 

 

이중근 칼럼

최재형의 대선 출마는 자기 부정이다

이중근 논설주간

 

최재형 감사원장이 자진사퇴했다.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등 거취 논란이 있는 데다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 원장직 수행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는 게 이유다. 향후 행보는 좀 더 숙고한 뒤 차차 밝히겠다고 했지만 선택은 대선 출마 쪽으로 기울었다. 최 전 원장이 가볍게 내린 결론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감사원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판단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중근 논설주간

감사원을 정치적 중립성을 띤 헌법기관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국가의 근간인 헌법에 의해 설치되고, 권한이 부여된 특별한 기관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대통령 소속의 중앙행정기관이지만 직무에서 독립을 누린다는 점이다. 감사원 소속 공무원의 임면이나 조직·예산 편성에 있어서 독립성도 인정된다. 이때의 대통령은 행정수반으로서의 대통령이 아닌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임은 물론이다. 감사원장 임명에 국회 동의를 받고, 감사위원들의 정당 가입 또는 정치 운동 등이 금지된 이유이기도 하다.

 

감사원의 또 다른 특징은 합의제 기관이라는 점이다. 감사결과 의결을 포함한 모든 중요 업무는 감사원장을 포함한 감사위원들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의에서 다뤄지는데, 이는 철저히 합의제로 운영된다. 감사원 업무의 신중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다. 감사원의 업무가 그만큼 민감하기에 내부에서조차 위원들 간 독립성이 견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감사원장은 사무처를 통해 감사를 지휘할 뿐이다. 결국 감사원을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을 꼽으라면 중립성이 될 수밖에 없다. 또 그 중립성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 직무의 독립성이다. 하지만 우리 헌정사에서 감사원의 중립성은 번번이 유린되었다. 그리고 촛불정권이 들어선 지 반년 후 미담의 주인공이자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판사 최재형이 감사원장에 임명됐다.

 

그의 취임사는 보태고 덜 게 없을 만큼 감사원을 적확하게 읽었다. 그는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감사원이 돼야 한다”며 “적극적인 업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과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면책시키고, 감사 과정에서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밝혔다. 공직사회가 환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20년 이상 감사원을 지켜본 입장에서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온 대목은 그다음이었다. 그는 “국가 최고감사기구로서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무엇보다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의 독립성을 지켜내야 한다”면서 “정치적 중립성과 직무상 독립성을 철저히 지키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감사원의 중립·독립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결의가 남달랐고, 실제 그런 모습이 보였다. 지난해 그가 월성 원전 감사 건으로 사임 압력을 받을 때 주저 없이 <최재형의 실험은 계속돼야 한다>는 칼럼을 쓴 이유다.

 

최 전 원장이 문재인 정권에서 어떤 일을 겪었기에 임기 중 사퇴·대선 출마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최 전 원장의 선택에 여권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은 짐작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감사원장에서 곧바로 정치인으로 변신하고, 또 대선에 나설 명분이 될 수는 없다. 그보다 판사로서 훨씬 더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회창은 감사원장에 총리를 거쳐 대선에 두 번 출마했지만 선택을 받지 못했다. 1년 내내 정권에 맞서 수사를 진행하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비해서도 그의 출마 명분은 약하다. 윤 전 총장은 일부 시민으로부터 출마 요구를 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최 전 원장은 출마를 부추기는 몇몇의 말을 듣고 혼자 정치 참여를 결정했다.

 

무엇보다 이번 선택으로 최 전 원장이 지금껏 견지해온 감사원 독립성 유지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있다. 흉중에 권력 의지를 감춰놓고 감사원을 자기 뜻대로 움직였다는 비판을 무엇으로 넘을 것인가. 공정과 원칙을 외치는 젊은이들이 과연 감사원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약속을 깬 그의 결단에 동의할까.

 

숙고에 들어간 최 전 원장이 해야 할 일이 있다. “대한민국이 오늘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랑스러운 나라로 우뚝 섰을 때 감사원에 내가 있었다고 자녀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감사원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한 취임사 때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최 전 원장이 진정 감사원의 독립성을 지키고자 한다면 정치에 참여할 뜻을 재고해야 한다. 감사원의 존재 이유와 헌법적 가치는 최재형의 출마보다 훨씬 더 무겁다. 그가 아무리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이고 정치적인 자산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 점은 변할 수 없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6300300035#csidxfe1cf451196722f809f9e64019fad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