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좀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지켜지는 예의가
낯익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일이 흔합니다.
처음 해보는 일을 할 때는 온 정신을 집중해서 하지만
익숙한 일을 할 때는 건성으로 하다가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 관계, 환경... 익숙해지면 편해지고 편해지면 조심하지 않아
사고가 나고 뒷걸음질 치기 쉽습니다.
2021년 여름은 제가 살아온 여러 해 중에 가장 편하고 편리한 해,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무례하고 시끄럽고 건성으로 가득한 해.
그래서 아래 글이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익숙함을 경계하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조선 후기 문인 홍길주가 오랜 지인인 상득용에게 축하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축하하는 이유가 이상하다. 상득용이 말에서 떨어진 일을 축하한다는 것이다. 뼈가 어긋나고 인대가 늘어나서 꼼짝 못하고 드러누운 채 종일 신음만 내뱉고 있는 이에게 축하 편지라니. 찰과상으로 흉측해진 상득용의 얼굴이 더욱 찌푸려지지 않았을까? 사리에 어긋난 일임을 잘 알면서도 홍길주는 자신이 축하하는 이유를 써내려갔다.
상득용은 무인이다. 말을 자기 몸처럼 다루며 능수능란하게 타는 것으로 이름이 났으며 본인도 말 타는 능력만큼은 자부하곤 했다. 홍길주는 바로 이 익숙함이야말로 낭패에 이르는 길이라고 하였다. 말 타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더라면 고삐를 부여잡고 안장에 바짝 앉아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갔을 테니 크게 떨어질 일이 없었을 것이다. 워낙 익숙했기에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한밤중에 험한 길을 내달리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낭패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경계는 그렇다 쳐도, 축하할 이유는 무엇일까? 홍길주는
<주역> ‘서합()’ 괘에 대한 공자의 해설을 끌어왔다. ‘서합’ 괘의 첫 효사는 “차꼬를 채워 발꿈치를 상하게 하니 허물이 없다”이다. 공자는 이를 “이익이 없으면 열심히 하지 않고 위협이 없으면 경계할 줄 모르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작은 징벌을 받아 더 큰일의 경계를 삼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당장은 낙마의 고통과 수치가 커 보이지만 이를 계기로 익숙한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돌아본다면 더 큰 낭패를 미연에 막을 수 있을 테니 참으로 복된 일이다. 이것이 홍길주가 밝힌 축하의 이유다.
익숙함에 대한 경계는 낭패를 방지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공자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잃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정의롭지 못한 일을 행하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여겼다. 부끄러움에 둔감하고 두려움 없이 행동하는 것 역시 익숙해짐의 결과다. 우리 자신을 이루는 것은 순간순간 별 생각 없이 익숙하게 던지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다. 그러니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 할 대상은 아직 오지 않은 낭패가 아니라 우리 안에 아무렇지도 않게 퍼져 있는 익숙함이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06160300045#csidxf53a94bbed66b349780ab6875bb98d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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