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사과야 미안하다 (2012년 12월 2일)

divicom 2012. 12. 2. 17:08

오늘 tbs '즐거운 산책' 시간에는 정일근 시인의 사과야 미안하다’를 읽어드렸습니다. 이 시는 2003년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에는 사과 과수원을 하는 착한 친구나 나오는데, 저도 과수원을 하는 착한 선생님 한 분을 압니다. 김광호 선생님.


선생님의 사과밭은 충남 예산에 있습니다선생님은 사과밭 곳곳에 스피커를 달아두고 당신이 좋아하시는 음악을 사과나무들과 함께 들으시며 사과밭에 거름을 주고 가지를 쳐주십니다그래서 그런지선생님이 보내주시는 사과는 서울의 마트에서 사는 사과들과 다르게 향기롭습니다


정 시인의 시에서는 사과를 깎아 먹지만 저는 선생님이 보내주시는 사과를 껍질째 먹습니다사과는 사시사철 언제나 향기롭고 맛있지만 사과 맛이 제일 좋을 때는 겨울입니다한 입 베어 물면 사과 알마다 깊숙이 배어 있던 향기가 입 안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그 향기 속에 햇살바람달빛별빛그리고 선생님이 들으시는 음악까지 들어있겠지요.


지난 가을 태풍으로 선생님의 사과들 대다수가 피해를 입었습니다선생님이 보내주신 사과는 상처투성이이지만 그래도 향기는 여전합니다사과를 떨어뜨리고 상처 준 태풍도 향기까지 빼앗아가진 못했구나 생각하니 사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나이 들어가며 주름투성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여전히 향기로운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향기로운 사과로 각성케하시는 김 선생님, 늘 감사합니다!


 

사과야 미안하다

 

사과 과수원을 하는 착한 친구가 있다. 사과꽃 속에서 사과가 나오고, 사과 속에서 더운 밥이 나온다며, 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야 고맙다, 사과나무 그루그루마다 꼬박꼬박 절하며 과수원을 돌던 그 친구를 본 적이 있다. 사과꽃이 새치름하게 눈뜨던 저녁이었다. 그날 나는 천 년에 한 번씩만 사람에게 핀다는 사과꽃 향기를 맡았다.

 

눈 내리는 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 칼등으로 쳐서 사과를 혼절시킨 뒤 그 뒤에 친구는 사과를 깎는다. 붉은 사과에 차가운 칼날이 닿기 전에 영혼을 울리는 저 따뜻한 생명의 만트라. 사과야 미안하다 사과야 미안하다. 친구가 제 살과 같은 사과를 조심조심 깎는 정갈한 밤, 하늘에 사과꽃 같은 눈꽃이 피고 온 세상에 사과 향기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