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빙판 (2012년 12월 16일)

divicom 2012. 12. 16. 23:21

오늘 tbs '즐거운 산책' 시간에는 양애경 시인의 빙판’이라는 시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이 시는 1988년에 출간된 시집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오빠네가 함께 사는 친가에 갔더니 오빠가 오른쪽 팔에 깁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넘어지기를 잘하고 넘어졌다 하면 뼈나 인대에 탈이 나 깁스를 너댓 번이나 했지만 오빠가 깁스한 모습을 보니 참 안쓰러웠습니다. 동생이면 '저런... 어쩌다 그랬어...' 하며 여러 말을 했겠지만 손윗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기도 저어되어 "오빠, 그래도 다행이에요, 다리를 다친 것보단 훨씬 나아요" 하고 위로아닌 위로를 했습니다. 사실 다리에 깁스를 하면 움직일 수가 없어 훨씬 불편하고 그러다보니 허리까지 아프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빙판' 하면 누구나 추운 겨울을 생각하지만 삶의 골목골목엔 빙판처럼 우리를 시험하는 곳들이 늘 있습니다. 때로는 넘어졌다 바로 일어날 수 있지만 때로는 뼈에 금이 가거나 인대가 끊어져 옴짝달싹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젊은이는 낙상을 해도 다시 회복되지만 연로하신 분들 중엔 낙상에서 회복되지 못하여 불귀의 객이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발을 잘못 디디거나 미끄러운 곳에서 넘어지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니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으로 나동그라졌을 때는 의지가 지팡이입니다. 이 겨울, 부디 넘어지지 마시고 넘어지셨을 때는 툭툭 털고 일어나실 수 있게 평소에 체조를 좀 해두시기 바랍니다. 정신적인 추락으로 괴로우실 때는 '계곡이 깊으면 산이 높음'을 생각하시어 일어나시길 빕니다.



 

빙판

 

내 집 현관에서 무심히

한 걸음 내디디다 쿵

동네 보도에서 주루룩

마음놓고 디딜 때마다 쿵

또 눈이 내린다

햇빛 밑에서 녹으며 내리고

그늘에서 얼며 내린다

바람 불면 날리면서 내린다

재채기를 하며 눈을 맞는다

눈물을 흘리며 눈을 맞는다

아이를 업고 눈을 맞는다

아이는 잠들어 돌같이 가라앉는데

또 눈이 내린다

마음놓고 기댈 때마다 허물어진다

사랑하는 일같이

믿을 때마다 넘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