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TBS '즐거운 산책' 시간에는 정희성 선생의 시 ‘옹기전에서’를 읽어드렸습니다. 이 시는 1981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13인신작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능은 끝났지만 수험생들과 부모님들은 아직 그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수능 성적에 따라 갈 수 있는 대학이 정해진다는 거지요.
평생 시험을 치르고 그 후유증을 앓느라 삶을 소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험을 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잘 치길 바라지만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인생을 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제 삶을 돌아보아 제일 잘 된 일은 처음 치른 대학 입학시험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실수와 실패가 없는 사람은 남들에게 가혹하고 사소한 잘못도 쉬이 용서할 줄 모릅니다. 실수하고 실패하는 사람, 그 실수와 실패에서 배우며 자신을 키우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큰 사람'이 됩니다.
옹기전에서
나는 왠지 잘 빚어진 항아리보다
좀 실수를 한 듯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를 따라와 옹기를 고르면서
늘 느끼는 일이지만
몸소 질그릇을 굽는다는
옹기점 주인의 모습에도
어딘가 좀 빈 데가 있어
그것이 그렇게 넉넉해 보였다
내가 골라놓은 질그릇을 보고
아내는 곧잘 화를 내지만
뒷전을 돌아보면
그가 그냥 투박하게 웃고 섰다
가끔 생각해 보곤 하는데
나는 어딘가 좀 모자라는 놈인가 싶다
질그릇 하나를 고르는 데도
실수한 것보다는 차라리
실패한 것을 택하니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 보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시인들도 그런 경우가 많지만 위의 시를 쓴 정희성 시인은 실망스럽지 않았습니다. 오래 전에 한 번 뵙고 이 시인은 자기 시와 꼭 같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희성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유명한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도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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