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한-일 군사협정에 관한 글을 보내주었습니다. 정부는 이 협정을 국무회의에서 비밀리에 통과시키고 소리 없이 서명하려 하다가 이 소식이 공개되자 '보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보류'하면 되는 사안일까요? 평화연구원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합니다. 한 번 읽어 보시지요.
한-일 군사협정, 보류로 끝낼 일이 아니다
헌법 절차를 무시한 밀실 처리
지난 6월 26일 외교부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뜻밖의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총리 주재의 국무회의에서 해방 이후 최초의 한·일 군사협정인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이 채택되었다는 것이다. 긴급안건으로 국무회의에 상정돼 비밀리에 통과시키면서, 본문에는 ‘군사비밀정보’라는 단어를 그대로 둔 채 제목에서 ‘군사’라는 단어만 빼버리는 눈가림도 했다.
이번 한·일 군사협정은 24쪽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긴 내용을 담은 것으로, 1년 반 이상 정부 내에서 준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이를 국무회의에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은 해외순방 중이었고 정부부처의 국회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오히려 정부는 협정문 공개를 요구하는 여론 앞에 일본 각의에서 통과되고 서명이 완료된 뒤에야 공개할 수 있다는 오만함까지 보였다.
그러나 한·일 군사협정을 체결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국민여론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급기야 한·일 양국이 서명하기로 약속한 6월 29일 오후 4시를 불과 1시간 남겨놓고 정부는 협정의 서명을 전격 보류한다고 발표하였다. 뒤를 이어 김황식 국무총리가 졸속 처리에 대해 공개사과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번 한·일 군사협정의 국무회의 통과과정이 헌법절차 위반 행위라면 책임자의 문책이 불가피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60조 1항에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번처럼 안전보장에 관한 한·일 군사협정을 국무회의만 거쳐 발효시키는 것은 헌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밀실 처리는 잘못됐으나 한·일 군사협정은 필요하다?
더구나 한·일 군사협정 보류를 선언한 후 정부의 태도는 낯을 뜨겁게 한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자신들이 공개 추진을 건의했지만 청와대가 이를 묵살해 불가피하게 비공개로 추진하게 되었다며 책임을 청와대로 떠넘겼다. 청와대 측도 정부부처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한 일로서 국회에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은 외교부와 국방부의 탓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외교부와 국방부 간에도 네 탓으로 일관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은 7월 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협정 체결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 점을 지적하면서 ‘절차상의 잘못’을 질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는 협정’이라며 협정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자세를 취했다. 이러한 정부 최고위 당국자의 인식은 현재의 국제정세는 물론이고 역사의 교훈을 제대로 읽지 못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직전, 조선과 청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어 전운이 감돌았었다. 그러자 일본 측에서 조선에 구원병을 파견하겠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하지만 조선 조정에서는 곧바로 이 제안을 거절하였다. 조선 조정이 그렇게 한 것은 단지 일본에 대한 감정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도움으로 청을 물리친다 하더라도 조선 땅이 일본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남북관계가 악화되자 북한을 겨냥해 첨단 군사정보를 얻겠다고 일본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체결하려고 한다.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되지 않도록 주변환경을 관리해 나가는 노력을 선행시키지 않은 채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기만 하면 북한의 도발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말을 마차 뒤에 매는 꼴이나 다름없다.
물론 안보는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안보를 얘기하려면 북한의 위협에만 한정하여 잣대를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 일제강점기에 겪었던 학살과 탄압, 약탈은 과거사로 치더라도, 아직도 한일합방을 합법적이라 주장하고 종군위안부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오늘날의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는다는 것은 역사와 국민감정을 무시한 일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 안보개념의 틀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는 중국 포위망 참여
미국이 한·미·일 3국을 엮어 삼각군사동맹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1960년대 초반부터 이른바 지역통합전략의 이름으로 추진되어 왔다. 하지만 당시 박정희 정부는 이러한 시도가 동아시아지역에서 일본의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시켜 줄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거부했었다.
이처럼 냉전시대에도 만들어지지 못했던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구축이 철 지난 탈냉전 시대에 들어와 시도되고 있다. 미국은 이른바 대(對)중국 포위전략의 일환으로 한국과 일본을 향해 ‘공동 군사협력’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은 물론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이 급팽창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해 한·미·일 3각 협력 강화를 강력히 추진해왔다. 그 구체적인 모습이 2011년 1월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합의한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의 두 가지 군사협정 추진으로 나타났다.
지금 한국과 일본이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을 체결하려는 목적은 이미 김관진 국방장관의 언급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2011년 4월 7일 김관진 국방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한·일 군사관계는 낮은 단계의 군사동맹…… 이 문제는 한·일 양국 관계와 국민적 정서를 고려해 단계적으로, 점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급부상하고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는 등 동아시아에서 세력전이가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 냉전시대와 같은 국가전략으로 대한민국의 발전을 지속시킬 수 있을까. 한국전쟁 때 미국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이 생존해 오늘날과 같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거 사실의 존재와 미국이 구상하는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에 참가할 것이냐는 미래의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17세기 초 명·청 교체기, 청나라가 급부상하고 있음에도 조선왕조는 재조지은(再造之恩), 즉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원군을 보내준 데 보답해야 한다며 명에 대한 사대정책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조선왕조는 일본이 일으킨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끝난 지 30여 년 만에 국왕이 청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병자호란의 재앙을 맞았다. 이는 청나라의 부상에 따른 동아시아 세력전이를 올바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 재무장의 빗장을 풀어줄 것인가
현재 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는 일본이 정식 군대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며, 외국과의 집단적 자위권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비전투요원들로 구성된 평화유지대(PKO)도 1990년대에 들어와서야 해외에 파견할 수 있었다. 일본 우익들이 오랫동안 헌법 개정을 꾀해왔음에도 평화헌법이 유지된 것은 일본 내 평화운동세력과 한국·중국 등 주변국들의 엄중한 경고 때문이었다.
이처럼 일본 국내의 동의도 구하지 못한 일본 군사화의 빗장을 우리 정부가 나서서 풀어주려고 하고 있다. 한·일 군사협정을 체결하게 되면 일본의 ‘평화헌법’을 훼손하여 일본군국주의의 부활을 막아왔던 빗장을 풀어주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 정부가 한·일 군사협정을 비밀리에 강행 처리함으로써 다음 정부를 꼼짝 없이 한·미·일 삼각동맹체제에 묶어놓기 위한 ‘대못질’을 하려는 것이다.
정부는 군사정보보호 협정의 필요성으로 일본의 앞선 정보력을 북한문제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설명한다. 그렇다면 북한문제의 개입에 일본자위대의 정보력을 사용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어떤 경우든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개입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일단은 과거사 문제의 해결 이전까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물론 ‘상호군수지원협정’을 포함한 일체의 한·일 간 군사협정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
만약 일본이 과거사 문제나 독도문제 등에서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하고 평화파괴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를 해소할 경우에는 한·일 군사협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의 안보이익과 통일과정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차원에서 한·일 군사협력의 수준은 한·중 군사협력과의 ‘비례성 원칙’에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며, 한·일 군사협정만 체결할 경우 이에 따르는 전략적 부담도 마땅히 고려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정부는 한·일 군사협정 문제를 국회에 보고하여 재추진하겠다고 한다. 단지 협정문을 공개하고 국회에 설명하는 절차를 추가한다고 할 뿐, 국민적 의사결집의 과정이나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를 거치겠다는 태도는 보이고 있지 않다. 만약 정부가 이 협정을 국무회의 의결만으로 강행처리한다면, 국민들은 이를 둘러싼 현 정부의 의도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만약 정부·여당의 강행처리로 이 협정이 발효된다고 하더라도 내년에 출범하는 차기 정부는 어떤 방법으로든 이 협정의 작동을 멈추게 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답이 정해져 있다고 하겠다. 다만 일본과 빚어질 수 있는 마찰을 해소하기 위한 별도의 외교적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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