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종북(從北)논쟁 (2012년 6월 1일)

divicom 2012. 6. 1. 23:44

어제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이메일로 보내준 '현안진단'은 최근 대통령의 발언으로 불거진 '종북(從北)'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옮겨둡니다. 한 번 읽어보시지요.

 

 

평화연구원 제 51호 현안진단: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 28, “북한의 주장도 문제지만 이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우리 내부의 종북세력은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정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과 2010년천안함 사건을 우리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 소위 종북세력에 대해 경고하고, 국제사회가 북한에 변화를 요구하듯이 국내 종북주의자들도 변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종북세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더구나 통합진보당 사태와 맞물려 제기된 화두(話頭)라는 점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이 국가안보 차원에서 종북주의 확산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는 강한 의지를 보인 만큼 공안당국의 종북세력조사(對共搜査)가 탄력을 받을 것이다. 아니면 야당의 평가처럼 대통령 발언이 현 정권의 실정을 이념공세로 가리려는 색깔론이라는 주장이 힘을 받을 경우 역풍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의 문제인식에 대한 여당과 야당의 평가가 정반대이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대한민국 체제를 흔들 정도로 종북주의가 심각하다는 것도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요, 색깔론에 입각한 정치공세라고 한다면 색깔론이 판을 치는 현상도 민주주의의 심각한 퇴보로 볼 수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불거지는 종북논쟁의 확산은 특정 당의 승리 여부를 떠나서 선거판 자체를 혼탁하게 하고 선거 후의 국민통합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왕 제기된 문제라면 흐지부지 넘어갈 것이 아니라 이참에 확실한 결말을 보아야 한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발전하기 위한 토대를 확고히 하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매카시즘에 대한 회고(回顧)와 우리의 사정

 

흔히 색깔론의 원조로 19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을 든다. ‘매카시즘은 확실한 이유 없이 정적(政敵)을 공산당이라고 몰아 제거하거나 비판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우리말의 색깔론과 같이 주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1950년 상원의원 매카시(Joseph McCarthy) "미국에 공산주의자가 활동하고 있으며, 297명의 공산당 명단을 갖고 있다."라고 하여 충격을 주었다. 사건이 여론화되고 의회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으나 매카시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매카시는 폭로를 계속했고, 신문은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이를 보도했으며 많은 보수파들이 동조했다. 이 덕에 당시 뇌물수수, 경력위조 의혹으로 퇴출 위기에 몰렸던 매카시는 대중적 지지를 늘려나갔다.

 

    하지만 정가의 속사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1930년대 중반부터 나타난 미국 내 보수·진보 진영 간 힘의 불균형이 복잡한 정치공학을 통해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 움직이고 있던 시점에 매카시가 존재했던 것이다.

 

    미국은 1차 대전 이후 전후복구와 맞물려 10년 이상 경제 호황기를 누리며 시장경제에의 무한신뢰와 함께 자유와 부()를 만끽했다. 주식은 사두기만 하면 대박을 치고 노동자도 자가용을 굴리는 등 지상낙원이 실현되는 듯했다. 그러나 1929년 주식 폭락에 이은 경제 대공황으로 후버 대통령의 공화당 정권은 1933년 루즈벨트의 민주당에 참패한 후 20년간 야당으로 있으며 민주당의 장기집권에 대항할 무기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미 하원 반미활동위원회(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의 청문회에는 수백 명의 증인이 소환됐고 청문기록은 1만 페이지에 육박했다. 공화당은 이런 분위기를 잘 이용하여 민주당을 간접적으로 공격하고 민주당은 빨갱이 소리가 두려워 매카시에게 협조하게 된다. 드디어 1952년에 공화당은 20년 민주당 정권을 누르고 집권에 성공한다.

 

    그러나 공화당이 집권하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미국 정가는 오랜 매카시즘 광풍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공화당은 집권 후 매카시즘에 대한 매력을 잃었고, 매카시즘이 통제불능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우려했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양심선언을 통해 "독재자의 방법으로 자유를 지켜서는 안 된다."고 개탄했으며, 대법원도 헌법정신에 따라 국가안보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1954년 한 방송사가 매카시의 비리와 거짓을 폭로하면서 한순간에 미국여론은 반()매카시로 변하게 되었다.

 

    사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 때 많은 미국인들은 제대로 의사표현을 못했지만, 반공(反共) 이념보다 의사표현(양심)의 자유가 더 소중한 가치라는 것을 집단적으로 인식하는 순간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에 한발 더 다가갔고 미국민주주의는 더욱 성숙하게 된다. 매카시즘이라는 시행착오를 확실히 돌파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토대를 구축하게 된 셈이다.

 

   후진정치를 청산하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계기로 삼자

 

    공산주의가 종말을 고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산주의 망령이 정가를 떠도는 일은 개탄할 일이다. 우리 사회가 또다시 무책임한 색깔론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야 하는가?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해서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요악인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각국들이 새로운 질서 아래 풍요를 위한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중견강국으로 확고하게 발돋움하기도 버거운 것이 사실이다. 인구도, 자원도 이를 뒷받침할 만큼 넉넉지 못하다. 국민 모두가 똘똘 뭉쳐서 힘과 지혜를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내어야 비로소 우리가 소망하는 결실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엄중한 시기에 이념논쟁에 발목 잡혀 우리의 힘을 소진하고 국민분열을 가져온다면 우리는 현재의 수준을 넘어설 수가 없다. 이념논쟁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의 산업화·민주화의 성공적인 수행 업적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우리 사회에 이분법의 허구적 잣대가 횡행하도록 만들 것이 뻔하다. 한마디로 백해무익이다.

 

    우리의 못난 과거사로 전쟁까지 치른 아픈 기억을 또다시 들춰내고 미래로 나아갈 동력을 허비하는 이념논쟁을 정말 되풀이할 작정인가? 우리 국민은 이제 이념논쟁이 안정도, 행복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 국민이 바라는 것은 21세기에 맞는 국가의 비전을 확고히 세우고 좌우를 아우르는 역량으로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내는 일이다.

 

     따라서 우리 국민은 나라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파괴하며,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가로막고 행복과 희망을 앗아가는 종북세력이 있다면 과감하게 도려낼 것을 요구한다. 그들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풍성하게 해줄 진보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이해관계로 끊임없이 색깔론을 제기하여 우리 사회의 분열을 일삼는 세력도 차제에 뿌리를 뽑아버릴 것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건전한 보수세력으로 위장했을 뿐 존재해야 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담당해야 할 몫은 자명하다. 정부는 종북주의자의 실체를 명백히 밝히고 법위반 사실에 대해서는 사법적 처리를 해야 한다. 또한 종북세력을 운위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색깔론에 해당한다면 이 또한 당연히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저급 정치꾼들이 일삼는 이념논쟁이 다시는 우리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여 후진 정치로부터 탈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편 역설적이지만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종북세력이 문제라고 선언한 정부는 국가안보를 소홀히 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가안보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 책임을 야당이나 국민의 안보의식 탓으로 돌리지 말아야 한다. 정부의 수많은 공안기구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우리 국민은 이제 편 가르기 정치, 막가파식 정치에는 신물이 나며, 희망을 주는 정치, 미래를 여는 정치를 원한다. 과연 정부가 이번의 종북논쟁을 어떻게 매듭지을 것인지 온 국민은 엄중하게 지켜볼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