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탈북자 문제와 남남갈등 (2012년 6월 22일)

divicom 2012. 6. 22. 08:31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에서 탈북자 문제를 다룬 '현안진단'을 보내주었습니다. 탈북자 수의 증가와 함께 그들의 한국 사회 적응, 그들을 대하는 남쪽 사람들의 태도 등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이 '현안진단'이 그런 생각을 부추겨주길 바랍니다. 길이가 길어 약간 줄였습니다.



탈북자문제를 남남갈등에 엮어서는 안 된다


탈북자 사회의 양극화


우리는 북한 땅을 떠나 남한지역에 들어온 북한주민들을 탈북자, 새터민,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자) 등으로 부른다. 그들의 수는 금년 5월 말 현재 2만 3,705명에 이르고 있다. 이들 가운데 70% 정도가 여성이다. 탈북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이들의 국내 정착을 돕기 위한 하나원이 하나 더 만들어질 정도이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들의 수가 많아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고위층에 있던 탈북자들은 국내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근에는 고위직 공무원인 통일부 통일교육원 원장에 이어 여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 이도 등장했다. 통일교육원 교수 가운데 한 명도 탈북자로 채울 방침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들의 삶은 천차만별이다. 탈북자들 가운데 성공한 이는 아직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 탈북자들은 굶주림 때문에 오랜 시일 중국대륙을 방황하다 제3국을 거쳐 한국 땅에 들어와 기아만 면했을 뿐 변변한 직업도 없이 또다시 한국사회에서 방황하고 있다. 자유와 풍요로운 삶에 대한 꿈과 기대는 우리 사회에 직접 진출하자마자 높은 벽에 부딪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위장탈북자에 의한 불신 심화


국내 탈북자들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위장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탈북자를 위장한 여성 간첩사건도 잇달아 적발되고 있다. 지난 2008년 원정화 사건, 2010년 김미화 사건에 이어 금년에 국가보위부 소속의 이경애가 체포되었다.


독일의 경우, 통일 후 동독 슈타지(Stasi) 정보원이 서독에만 4만 5천여 명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일부는 정치권 등 사회지도층에까지 암약한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사민당 당수이자 총리였던 빌리 브란트의 개인비서관 귄터 기욤이 1974년에 체포되었고, 기민당 당수이자 총리였던 헬무트 콜의 후원자인 아돌프 칸터도 슈타지 정보원이었음이 통일 이후에 밝혀졌다.


양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탈북자 가운데 위장한 간첩들을 가려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애매한 대다수가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일반국민들은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탈북자들을 곱지 않게 바라본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다 보니, 일부 탈북자들 가운데 중국 조선족이라고 속이고 사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탈북자들은 국내에 들어온 이상, 똑같은 권리를 가진 국민으로서 대한민국의 법에 의해 보호를 받아야 한다. 설사 극소수 위장탈북자가 있을 수 있다고 해도, 그들을 놓칠지언정 대다수의 탈북자들을 의심받으며 살 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탈북자들의 국내정치 개입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의 수가 늘어나면서, 일부 탈북자들은 스스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들의 권익 옹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가 하면, 일부는 북한인권의 개선이나 북한 민주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일부 탈북자들은 이러한 활동을 넘어 국내 정치활동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


최근 어느 탈북자는 모 초선 국회의원과 사석에서 한 말다툼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해 정치이슈화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탈북자들은 색깔공세에 편승해 해당 국회의원의 사무실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기도 했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는 탈북자들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성취하는 데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뒤늦게 우리 사회에 합류하여 경제적 혜택만 보고 있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다. 국내에서도 양극화다, 경기침체다 해서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부 탈북자들이 직접 이념적 정치단체를 만들거나 국내 특정 정치세력과 손잡고 활동하고 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정치성 집회의 선두에 서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일부 탈북자들의 행동은 국내 특정 정치세력에 편승하여 우리 사회에서 뭔가 특별한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일부 탈북자들의 정치성 행위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 대다수 탈북자의 처지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도대체 탈북자들이 이 땅에 들어온 이유가 무엇인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를 새긴다면 탈북자들 스스로 특정 정치권의 이해를 대변해 우리 사회의 남남갈등에 끼어들어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키는 일을 삼가는 것이 옳다. 탈북자들은 하루속히 이 사회에서 자립·자활하여 안착하는 한편, 남아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 경우에 북한에서 살았던 경험은 그들의 큰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탈북자들이 행복의 보금자리를 틀 수 있도록 돕자


우리가 통일한국의 미래상으로 접근해 나가는 데 있어 탈북자들의 성공적인 우리 사회 정착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통일의지와 능력을 보여주는 시금석일 뿐만 아니라, 민족공동체의 모델을 제시해줌으로써 북한 주민의 마음을 끌어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탈북자문제를 새롭게 인식하고 민관이 힘을 합쳐서 이들이 우리 사회에 순조롭게 편입할 수 있도록 보호 및 지원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들을 진심으로 포용하고 도와주기보다는 이를 가장해서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 물론 극소수 탈북자들의 일탈적 정치행위가 결코 현명한 처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일부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의 행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탈북자에게 기대어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우리 사회의 통합력 약화를 초래하는 것은 금도에 어긋나는 일이다.


최근 들어 일부 탈북자들이 이른바 ‘종북논쟁’의 중심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탈북자들의 정치행위는 현 정부가 어느 탈북자를 고위직 공무원에 임명한 뒤 여당에서 그를 비례대표 앞자리에 공천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사실 탈북자를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선정한 것은 현대정치학 이론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유권자 3,000만 명에 국회의원이 300명이니, 국회의원 한 사람이 10만 명의 유권자를 대변한다. 비례대표 의원 45명은 1인당 67만 명을 대변하는 자리다. 그런 점에서 탈북자 2만여 명이 모두 투표권을 가졌다고 본다 해도, 이들을 대표해 국회의원 1명을 배정한 것은 다분히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러한 정치권의 선택이 대선을 겨냥해 편 가르기를 유도하기 위한 정략적인 목적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는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 행복의 보금자리를 틀 수 있도록 제대로 도와주는 일과 거리가 멀다. 또한 현 여당이 남북관계를 정상적으로 풀 의사가 없는 것으로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보냄으로써 향후 남북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탈북자들을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데 이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하루속히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 정착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진심으로 도와야 한다. 그들의 행복한 삶을 통해 통일이 되면 잘살 수 있다는 희망의 바이러스를 북한주민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탈북자들을 위해서도,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