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발렌타이 데이를 앞두고 거리마다 초콜릿 물결입니다. 본래는 서기 500년에 발렌타인이라는 가톨릭 순교자(들)를 기려 교황이 정한 성 발렌타인 데이 (Saint Valentine's Day)라고 합니다. 남녀간의 사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던 이날이 처음으로 로맨틱한 의미를 가진 건 14세기 영국의 시인 제프리 초서 (Geoffrey Chaucer: 1343~1400)의 시에서라고 합니다.
초서는 1382년에 발표한 '새들의 의회 (Parlement of Foules)'라는 시에 'For this was on seynt Volantynys day/Whan euery bryd comyth there to chese his make.'라고 썼습니다. 중세 영어라 요즘 영어와는 철자가 많이 다른데, 요즘 말로 하면 'For this was Saint Valentine's Day, when every bird cometh there to choose his mate.'입니다. '이날이 성 발렌타인 데이라, 모든 새들이 짝을 찾으러 왔다'는 뜻이겠지요.
초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이 긴 시는 그가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2세와 보헤미아의 앤 공주의 약혼 1주년을 기념하여 썼다고 합니다. 이 시에서 '발렌타인 데이'라는 단어를 읽는 현대인들은 그 날이 2월 14일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리처드 2세와 앤의 약혼은 5월 2일에 이루어졌고, 영국의 자연조건상 2월 14일에 새들이 짝을 찾지는 않으니까요.
발렌타인 데이가 지금처럼 로맨틱한 날이 된 것은 아무래도 상업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지어낸 로맨틱한 얘기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카드회사인 American Greetings가 역사 전문 히스토리채널(History.com)에 제공한 얘기에 따르면, 발렌타인이라는 성직자가 사형을 당하기 전날 밤, 자신이 감옥살이 중에 알게 된 --혹은 사랑하게 된-- 간수의 딸에게 카드를 썼는데 거기에 "발렌타인으로부터 (From your Valentine)"라고 써 있었으며, 그것이 최초의 발렌타인 카드라고 합니다.
서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사랑을 축하하고 기념하여 카드를 주고받는 날로 시작된 발렌타인 데이가, 우리나라에 와서는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영리한 상술의 결과일뿐 아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습니다. 3월 14일을 '화이트 데이'로 만들어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탕을 주어야 한다고 광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좋지만 몸에 좋지 않은 단 것들을 지구에 해로운 커다란 포장에담아 주고받는 건 이제 그만하면 좋겠습니다. 발렌타인 데이에 낭만적 의미를 준 게 시인 초서라니,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릿 대신 시집을 주고받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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