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살인과 살인자 (2011년 2월 15일)

divicom 2011. 2. 15. 08:51

"어릴 때는 고등학교까지 같은 이불을 덮고

 대학에 가서는 작은 아랫방을 나누어 쓰고

 장가든 다음에는 외국에까지 나를 따라와

 여기 같은 동네 바로 뒷길에 살던

 내 동생 졸지에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하느님.

 동생이고 친구고 내 의지처였습니다

 하느님, 당신밖에 하소연할 곳이 없습니다.

 눈물이 자꾸 납니다. 관을 덮고 나면 내일 하늘이 열리고

 내일 지나면 이 땅에서 지워질 이름,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위의 시는 어제 한국일보에 실린 마종기 시인의 시입니다. 그가 동생 종훈 씨를 애도하며 쓴 시, '동생을 위한 조시(弔詩) - 외국에서 변을 당한 훈에게'라고 합니다. 종훈씨는 1994년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 다운타운의 자신이 운영하던 가발과 스포츠용품 가게에서 강도의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범인 조니 배스톤은 살인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오는 3월 10일 사형이 집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마종기 시인은 아동문학가 고(故) 마해송 선생의 아들로 오하이오주립대 방사선과 교수를 지냈습니다. 숨진 종훈씨는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로 근무하다 형이 살고 있던 오하이오로 이주해 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종훈씨의 유가족들은 지난달 "인간의 생명은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며 범인 배스톤의 사형에 반대하는 청원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종훈씨의 아들 피터 마(38)씨는 "범인이 죽는다고 해서 가족들의 심정이 나아지거나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시는 것이 아니다"며 "사형은 어떠한 좋은 결과도 가져오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인권ㆍ종교 단체가 아닌 희생자의 유족이 사형반대 탄원에 나선 것은 오하이오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하이오 사면위원회는 현지 시각으로 11일, 범인에 대한 사형 면제 요청을 만장일치로 거부했습니다. "사망자의 가족이 사형을 반대하지만 범인이 피해자를 처형식으로 총격 살해해 죄질이 나쁘고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아 사형을 면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배스톤은 종훈씨를 살해할 당시 겨우 21세였습니다. 태어난 후 오래지 않아 어머니에게 버려진 후 온갖 나쁜 환경에 노출되어 살았고 10대 초부터 경찰서와 감옥을 드나들었습니다. 스크라이브드 닷컴 (www.scribd.com)에서 'Baston Clemency'를 검색하면, 지옥과 같았던 그의 삶이 적나라하게 펼쳐집니다.

 

종훈씨의 가족이 고통과 불행 중에도 배스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생각하고 그의 사형을 반대하는 것은 참으로 고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법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주목하니 그의 사형을 고집하는 것이겠지요. 배스톤은 자신이 이 사건에 가담한 것은 사실이나 자신이 종훈씨를 살해하지는 않았고 살해한 것은 '레이'라는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를 수사했던 사람들은 거짓말에 능란한 그가 '레이'라는 가공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며 그런 사람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저도 종훈씨의 가족과 마찬가지로 배스톤의 사형에 반대합니다. 만의 하나, '레이'라는 인물이 있을 수도 있고, 배스톤이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될 때까지 운명과 사회가 기여한 것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은 여러 차례 어린 그에게 연락하여 몇 월 몇 일에 가겠다고 거짓말을 했던 어머니 때문일 겁니다. 언젠가는 법이 종훈씨 가족의 마음을 닮을 수 있을지... 착잡합니다. 뒤늦게나마 종훈씨의 안식과 그 가족의 평안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