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김영란 대법관 (2010년 10월 5일)

divicom 2010. 10. 5. 09:06

오늘 '동행'이라는 코너를 새로 엽니다. 저는 '동행'이라는 말을 좋아하여 자유칼럼에 글을 쓸 때도 '동행'이라는 큰 제목을 달았습니다. '동행'이라는 말에는 저 혼자만 행복해지진 않겠다, 저 혼자만 진리를 향해 가진 않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습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라고 묻던 전우익 선생과 같은 마음이지요. '동행'이라는 코너를 새로 만들기로 한 것은 저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 중에 훌륭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눈앞의 상황이 아무리 나빠도 훌륭한 동행이 많으면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동행'의 첫 인물로 지난 8월 대법관직에서 퇴임한 김영란 씨를 골랐습니다. 

 

대법관을 그만둔 다른 사람들처럼 변호사 개업을 하면 100억 원을 번다는데, 그는 변호사가 되는 대신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직을 택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겨레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강의가 처음이라 부담스러워 우선 한 학기에 한 강좌만 자유로운 주제로 강의를 해보고 싶었다"고 했답니다. 서강대가 자신의 뜻을 잘 이해해주어 강의를 맡게 되었으며 "내년 1학기엔 중요한 판례 10여개를 선정해 이를 법의 일반원칙과 관련해 설명하는 강의를 해볼 생각으로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그가 지난 8월 범관 생활을 마치며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다수자의 권리를 확인하는 것에서 사법부의 존재 근거를 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수자의 권리를 소수자의 그것과 단순히 대체하는 것은 소수자가 다시 다수자가 되는 논리이기에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법치의 혜택을 점점 넓혀가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법부를 선출직으로 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다수결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또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최초의 여성대법관으로서 출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몹시 불편하고 두려운 가운데 업무에 임했다”며, “좋은 대법관이 되는 것만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길이라고 생각해 최선을 다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법관은 출세나 승진의 자리가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고 최선의 길을 찾는 고뇌의 자리"라며, 대법원은 그런 곳이 되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참으로 최초의 여성 대법관에게 어울리는 결기있는 말입니다. 

 

그는 또 “판단하고 처벌하라는 판사의 직업을 통해 얼마나 슬픈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줬는지, 답답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줬는지 항상 자문해 왔다. 그 칼은 내게 늘 무겁기만 했다. 내게 주어진 그 칼을 돌려드리고 법원 밖 세상으로 나간다”고도 했습니다. 동료 인간들에 대한 그의 사랑이 묻어나는 말입니다.
 

그의 밝은 얼굴을 보며 겸손하고도 단단한 말을 들으니 중학교 때 담임 선생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선생님은 "솜에 싸인 금강석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겉은 솜처럼 부드럽지만 속은 금강석처럼 단단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시를 쓰던 분다운 아름다운 비유입니다.

 

법이 정치의 시녀가 된 지 오래이고, 대법관 경력을 발판으로 부자 변호사가 되고 고위행정직에 오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나라이지만, 김영란이라는 '금강석'이 있으니 희망이 있습니다. 부디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목소리에 귀를 씻고 법이 무엇이며 정의가 무엇인지 가슴으로 배우길 바랍니다. 김영란 화이팅, 서강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