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십대 중반 성수동은 낯익었습니다.
화양리 쪽에 있는 중학교를 다니며 버스 차창을 통해
저만치 성수동을 보기도 했고, 걸어가며 조금 더
가까이서 성수동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곳은 서울의 대표적 공업지역이었고 10대, 20대들에겐
좀 이질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곳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플'이
되었다는 말이 들렸습니다. 한국은 매일 변하는 나라이니
성수동의 변화도 당연하겠지만 '핫플'이 되었다는 건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어제 성수동에 갔습니다.
어제 본 성수동은 다른 나라, 다른 도시였습니다. 유명한
K팝 주도 기업들의 본부가 있는가 하면, 전 세계 유명
브랜드들의 팝업 스토어들이 넘쳐났습니다. 거리마다
무수한 한국과 외국의 젊은이들로 붐볐습니다.
말하자면, 또 하나의 '홍대입구'인데, 홍대입구와는 좀
다른 '힙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사람들은 모두 순례자이듯,
성수동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관광객과 여행자로
보였습니다. 문득 폴 고갱의 작품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우리는 무엇인가/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D'où Venons Nous/Que Sommes Nous/Où
Allons Nous)'. 이 글 첫머리 고갱의 작품 왼쪽 위에
쓰여 있지요.
사실 수십 년 만에 성수동 나들이를 한 데엔 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공간 '서재(Loud Library)'에서
주말마다 모여 그림을 그리던 대학생 일곱 명이 성수동에서
첫 번째 그룹전을 연 것입니다. 그룹의 이름은 '백일몽'.
전시회 제목은 '칠인몽화'.
그림을 전공하지 않는 대학생들이 일주일엔 한 번씩
모여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이 놀라웠는데, 그림을 보니
더욱 놀라웠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대로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서로 다른 형태로 상상을 풀어내지만,
예술가의 마음만큼은 공통으로 간직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전시'... 세계를 보는 시선과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진지한 사유와 질문이 감동적이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DTsEJRdkkYc/
김보경, 김경서, 양지수, 유가원, 윤서빈, 최성찬, 최현서.
일곱 작가들의 그림을 보고 나서 다시 성수동 거리에 서니
거리를 메운 젊은이들이 좀 다르게 보였습니다. 일곱
작가가 각기 다른 꿈을 꾸며 그림을 그리듯, 거리의
젊은이들도 각자 꿈꾸며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공간에서 열린 짧은 전시는 오늘 끝나지만,
레온갤러리 성수스트릿에서 열린 '백일몽'의 첫 그룹전을
오래 기억할 것 같습니다.
누구도 시간의 흐름에서 얘외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보송보송 가볍게 살고 싶어 해도 결국 시간의 강물에 젖게
마련입니다. 오래 살면 살수록 몸과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겠지요.
인간의 몸은 포유류의 몸이니 늙어 무거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지만, 마음은 늘 푸른 하늘 흰 구름처럼
자유로울 수 있는데 그건 오직 예술을 통해서일 겁니다.
(종교를 통해서도 가능하지만 그건 아주 독실한 신자들에게만
해당되겠지요.) 어쩌면 '백일몽'을 꾸는 일곱 젊은이들은
이미 그것을 알아 버린 건지 모릅니다. 그들이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길 빌며, 그들의 그림을 보고 나올 때 떠올랐던 노래
두 곡을 선물합니다.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와
'Peace of Mind'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n_vO4Bkfbk&list=RDfn_vO4Bkfbk&start_radio=1
https://www.youtube.com/watch?v=KHidJXZl8gc&list=RDKHidJXZl8gc&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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