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노년일기 274: 경상도 큰애기들 (2026년 1월 27일)

divicom 2026. 1. 27. 11:08

잔설 남은 길을 걸어 오랜만에 찾은 단골 카페,

창밖 대추나무와 나무를 안고 있는 작은 뜰이

남은 눈 덕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창가 자리에 젊은 여성 셋이 앉아 있습니다.

 

제가 늘 앉던 구석자리엔 이미 혼자 온 손님이

있고 앉을 곳은 세 여성 지척뿐입니다.  

세 사람과 저 사이에는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 있고 그들의 얘기는

일행의 얘기처럼 또렷이 들립니다.

 

립밤으로 시작한 대화가 화장품과 화장법으로

이어집니다. 젊어서일까 생각하니 제 젊은 날이

떠오릅니다. 외모가 오늘날처럼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라 그랬을까요? 친구들과 저는 화장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신문 기자로 일할

때여서인지 사석의 소재도 공적 주제를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대화의 소재도 그렇지만 창가 손님들의 말투와

음량이 집중을 방해합니다. 아주 진한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경상도 지방을 여행하며 들었으면

참 맛있다고 했을 사투리가 괴로운 소음입니다.

소리가 조금 작았으면 소음이 아니었을지 모릅니다.

얼마 전 그 카페에서 이웃했던 서양 사람이 떠오릅니다.

그의 영어가 너무 커서 오늘처럼 괴로웠습니다.

'여보세요, 목소리 좀 낮춰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걸 세 번쯤 참았을 때 그가 카페를 떠났습니다.

 

창가의 세 사람은 말투뿐만 아니라 하는 행동도

똑같습니다. 한 사람이 화장실에 다녀오며 문을

열어 놓고 오더니 그 다음 사람 또 그 다음 사람 모두

문을 열어 두고 옵니다. 실내가 좁아 찻잔을 들고

화장실의 변기를 봐야 하는데, 다행히 카페 주인이

화장실 문을 닫습니다. 손님을 골라 받을 수 없어

힘들다고 호소하던 주인. 그렇지 않아도 마른 몸이

더 말라가는 이유 중엔 저런 손님들도 있겠지요.

 

이 카페에서 저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저들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 중엔 서울말하는 사람도

있고 전라도나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도 있고

영어나 중국어를 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창가의 세 사람을 보며 경상도 사람들이나 경상도

사투리를 폄하하는 건 부당합니다.

 

대신에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나로 인해 내가 쓰는

언어나 내 고향, 내 성(性)이나 내 세대가 비난받는

일이 없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아도

우린 언제나 한국어/한국인, 경상도/서울/전라도...

여자/남자, 노인/젊은이를 대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나뭇가지에 남은 눈처럼 풍경을 더 아름답게 하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제 동료 인간들이나 저와 인연을

맺은 것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진 않습니다. 친절하고

예의바르며 조용한 서울 할머니로 살다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