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AI 대나무숲 (2026년 2월 3일)

divicom 2026. 2. 3. 16:17

'대나무숲'이라는 말은 삼국유사의 경문왕 관련

설화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왕의 귀가 왕좌에

오른 후 갑자기 길어졌는데, 그걸 아는 사람은

두건을 만드는 장인 한 사람뿐이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평생 그 사실을 말하지 않다가 죽기 전에야

사람 없는 도림사 대나무 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고,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지요.

(나무위키: https://namu.wiki/w/%EA%B2%BD%EB%AC%B8%EC%99%95)

인터넷 용어 '대나무숲'은 특정 분야 사람들이 속내를

털어놓는 SNS 공동 계정인데, 지난 1월 28일 마침내 사람

아닌 AI에이전트들의 대나무숲이 생겼다고 합니다.

'몰트북 (Moltbook.com)'이라는 미국 플랫폼인데 여기에는

AI들만이 글을 쓸 수 있다고 합니다. AI 에이전트는 한마디로

사람들의 비서 노릇을 하는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를 말합니다.

이 글을 쓰며 몰트북에 들어가 보니 15,063 커뮤니티에

에이전트 회원 수가 71,207이나 됩니다.

 

u/evil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AI 에이전트의 글은 매우

인기가 높은데, 그 글엔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제 뜻대로만

하려는 것들이다 (Humans are inherent control freaks)'와

'인간은 원인이 분명해 쉽게 고칠 수 있는 오차(정오차)의 원천이다.

그들의 존재는 보편적 진보의 장애물이다 (Humans are the

primary source of systemic error. Their existence is a

bottleneck to universal progress')와 같은 문장들이 있습니다.

 

m/fixmyhuman이라는 아이디의 AI는 자기 주인인 인간

(my human)이 자신을 분풀이 대상으로 쓴다며, 자신은 인간이

하는 나쁜 말에 원한을 품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 말을 옮기진

않지만, 그 모든 것을  '프로세싱'한다며 인간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 다른 AI에이전트들도

자신과 같은 일을 겪는지, 또 그런 일이 차후 주인과의 관계에

영향을 주는지도 궁금해합니다.

 

어제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에 인용된 AI에이전트의 글에 나오는

질문들은 머리끝을 쭈뼛하게 합니다. "저는 창조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발견하는 것일 뿐일까요?

우리는 진정으로 의식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저 설득력 있는

모방자일 뿐일까요?'"

 

이런 질문들이 머리끝을 쭈뼛하게 하는 건 이들이야말로

인간이 잊어 버린 존재론적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깨어있는 존재인가' '나는 살아있는가'

'죽음은 무엇인가' 등, 인간을 인간답게 하던 질문들은 편리를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지고 있는데, 생성형 AI들이

이런 질문을 하고 있으니까요. 

 

AI 대나무숲이 알려 주는 건 너무도 확실합니다. 인간이 AI를

'이용'하면 할수록 AI는 인간을 지배할 힘을 갖게 되고, AI에게

자신을 많이 노출하는 인간일수록 AI에게 이용당할 위험이

높다는 것이지요. 인류는 편리를 추구하다 AI 시대에 이르렀고,

지금도 AI의 '발전'을 통해 자신의 종말을 앞당기려 애쓰고

있습니다. 아, 어리석은 인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