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오랜 친구들을 만나러 시내에 나갔습니다.
버스 창문밖 서울은 많이 달라져 보였지만,
버스 안의 늙고 젊은 얼굴들은 별로 달라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긴장, 불안, 불만, 외로움이
풍기는 얼굴들... 행복한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신호를 기다리는 안국동 횡단보도엔 매서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미세먼지를 밀어낸 바람이
고마우면서도 미세먼지는 밀어내되 이렇게 차갑지
않을 수는 없을까, 왜 모든 좋은 것엔, 바람에게까지도
세금 같은 그림자가 붙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네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은 건 한참만이었습니다.
지난달 한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서 잠깐 보긴 했지만, 네 사람이
네 사람을 보기 위해 만난 건 오랜만이었습니다.
저를 뺀 세 사람은 모두 노화가 정지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현직에서 바쁘게 일하는 친구,
어머님을 여읜 후 고아의 삶에 적응 중인 친구,
늘 무엇인가를 배우느라 바쁜 친구. 친구들의
얼굴에서 우리를 친구로 만든 가치들이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있음을 느끼니 반갑고 행복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는 출퇴근 시간처럼 붐볐습니다.
좁은 공간의 밀폐되다시피한 공기를 많은 사람이
함께 호흡해서인지 긴 자동차 여행을 할 때처럼
멀미가 났습니다. 멀미를 이기려 얼마 전에 본
넷플릭스 영화 '얼굴'을 생각했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를 보며 실망한 제게 다시 한국 영화를 봐야
함을 일깨워 준 연상호 감독의 작품,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발견한 배우 박정민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게 해 준 영화입니다.
영화 '얼굴'의 영어 제목은 'The Ugly'. 번역하면
추한 것, 추녀, 추한 사람들쯤 되겠지요.
이 영화는 주변 모든 이들로부터 추하다는 말을
듣던 한 여인의 짧은 생애를 중심으로 추한 것은
무엇이고 아름다운 것은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무엇이며 말은 무엇이고 듣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
무수한 물음표를 거쳐 마침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도달합니다.
'얼굴', 그 좋은 영화를 생각해도 멀미는 그치지
않았지만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모자와 마스크 사이 노출된 눈 주변으로 찬바람이
달려들었습니다. 차가워서 반가운 바람, 오래된
우정처럼 세금도 그림자도 없는 바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