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 가로수 아래 꺾인 채 버려진 꽃이
여러 송이입니다. 노란 꽃, 하얀 꽃, 큰 꽃,
작은 꽃... 활짝 핀 얼굴도 점 같은 봉오리도
모두 꽃입니다.
이 꽃들을 꺾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땡볕을 가리지 못하는 어린 가로수 밑에
이 꽃들을 놓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꽃을 꺾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 꽃을
건네받은 누구일까요?
시들고 있는 꽃이 가엾어서 집어들고
왔습니다. 노란 꽃은 목이 길고 하얀 꽃은
목이 짧아 한 꽃병에 꽂을 수 없으니
목 긴 꽃은 조금 깊은 병에 꽂고 짧은 꽃은
작은 술잔에 담습니다. 그래봤자 다
제 손가락 길이입니다.
목이 많이 말랐나 봅니다. 꽃들이 소리없이
물을 빨아들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기가
돕니다.
땡볕 아래 말라 죽거나 꽃병의 물을 먹다
죽거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뭐하러
들고 왔느냐고요? 그러게요...
그 꽃들을 왜 집어들고 왔을까요?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버려진 채
죽게 둘 수는 없었던 거지요.
그런데, 혹시 그 꽃들이 버려진 게 아니면?
누군가가 그 어린 가로수에게 햇살에 기죽지
말고 씩씩하게 자라라고 선물한 꽃이면?
아, 그러면 저는 난생 처음 꽃 도둑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