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163: 아카시아 (2023년 5월 7일)

divicom 2023. 5. 7. 08:30

뒷산에 아카시아가 흐드러진 줄도 모른 채

밤낮으로 동분서주하다가 어느 날 앞창을 여니

아카시아 향기가 와락 저를 감쌌습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빈틈없이 안아주는

향기가 저절로 눈을 젖게 했습니다.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꽃을 피운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못했는데도 그들은 화내는

대신 산을 내려 돌아와 포옹을 해주었으니까요.

 

이튿날엔 비가 쏟아졌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다 떨어지겠구나 마음을 졸이면서도 뒷산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한 이틀 후 내다보니 떨어진 흰 꽃들이

무수히 산의 배께를 덮고 있지만, 나무마다

떨어지지 않은 꽃들이 환했습니다. 꽃의 수가

준 데다가 습기를 머금어 향기는 줄었어도 

뒷산은 여전히 아카시아 천지였습니다.

 

아카시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비를 견디는 힘을

갖지 못하면 화무십일홍 (紅)의 제물이

될 뿐이야.'  

 

아카시아여, 소나기를 맞고 있는 내게도

비를 견디는 힘을 나누어주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