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 아카시아가 흐드러진 줄도 모른 채
밤낮으로 동분서주하다가 어느 날 앞창을 여니
아카시아 향기가 와락 저를 감쌌습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빈틈없이 안아주는
향기가 저절로 눈을 젖게 했습니다.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 꽃을 피운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못했는데도 그들은 화내는
대신 산을 내려 돌아와 포옹을 해주었으니까요.
이튿날엔 비가 쏟아졌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다 떨어지겠구나 마음을 졸이면서도 뒷산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한 이틀 후 내다보니 떨어진 흰 꽃들이
무수히 산의 배께를 덮고 있지만, 나무마다
떨어지지 않은 꽃들이 환했습니다. 꽃의 수가
준 데다가 습기를 머금어 향기는 줄었어도
뒷산은 여전히 아카시아 천지였습니다.
아카시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비를 견디는 힘을
갖지 못하면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의 제물이
될 뿐이야.'
아카시아여, 소나기를 맞고 있는 내게도
비를 견디는 힘을 나누어주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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