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일기 82: 쌀 (2021년 7월 7일)

divicom 2021. 7. 7. 11:25

어제 저녁밥을 끝으로 쌀이 똑 떨어졌습니다.

하루에 한끼는 밥을 먹으니 오늘 중에 쌀을 사야 합니다.

식구가 적어 많이 산다고 해도 10킬로그램 한 봉입니다.

 

우편함에 새로 생긴 마트의 홍보 전단지가 있기에 보니

10kg짜리 쌀을 시중보다 훨씬 싸게 판다고 나와 있습니다.

아, 나는 역시 운이 좋구나 생각했습니다.

 

9시에 마트 영업이 시작된다기에 9시 10분쯤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서 마트까지는 차로 5분 거리입니다.

얼른 쌀을 사다 놓고 할 일을 하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마트에 가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들어가긴 했는데

상품대 사이마다 사람이 가득하여 정신이 자꾸 아득해졌습니다.

싼 것도 좋지만 쓰러질 것 같아 밖으로 나갔습니다.

 

주차장이 없어 주변을 차로 돌고 있던 룸메이트에게

전화를 거니 얼른 와주었습니다. 나선 김에 쌀을 사자고

평소에 다니던 마트에 갔는데 거기는 아직 영업 시작 전이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다른 마트에 가니 손님이 없어

쾌적하지만, 쌀 값은 전단지에서 본 가격보다 훨씬

비쌌습니다. 일, 이 천원 차이면 그냥 사겠지만

만원 넘게 차이가 나니 살 수가 없었습니다.

한창 돈을 벌던 젊은 날 같으면 그깟 만 원? 하겠지만

지금은 만 원이  큰돈입니다.

 

룸메이트와 저는 다시 용기를 내어  새로 생긴 마트로

갔습니다. 더 큰 용기를 내어 쌀 봉지가 쌓여 있는 곳을

찾아냈고, 드디어 한 봉지를 들고 계산대 앞의 줄에 섰습니다.

 

긴 줄마다 제 또래거나 저보다 나이든 사람들이 

전단지에서 본 할인 품목들을 들고 있었습니다.

계산은 더뎠습니다. 손님들이 나이가 많아서인지

물건 값을 잘못 알았다가 환불하거나 다른 물건으로

바꾸는 경우도 많고, 이 주머니 저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느라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쌀값을 계산하고 집으로 오는데

머리도 아팠지만 마음도 아팠습니다. 

 

늙는다는 건 가난해지는 겁니다.

부자조차 시간과 건강이 가난해지는 걸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과 건강은 물론이고 금전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마트 안이 복잡해 머리가 아프다며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은 아직 여유 있는 사람입니다.

더 가난하면 아무리 복잡한 마트라도 싼 것을 사기 위해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확진자 증가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연장한다는 서울시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아까 마트에서 본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그 마트만은 못 본 척

피해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