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고 말을 하고 눈 녹은 길을 걷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과 같았습니다.
심장이 멈춘 듯했습니다.
심장이 뛰지 않으려 하는 건 가끔 있는 일입니다.
한의사이신 황 선생님은 제 심장이 '태업'을 하려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심장에 녹이 슬었거나 때가 낀 거라고 생각합니다.
볼 필요가 없는 것들을 보고 들을 필요가 없는 소리를 듣고
갈 필요가 없는 곳들을 다니며 마음 쓸 필요가 없는 일들에
마음을 쓰는 바람에 녹이 슬고 때가 낀 것이지요.
가슴에 문이 있다면 그 문을 열고 서랍 속 물건을 꺼내듯
심장을 꺼내어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싶습니다.
언제였던가, 다이 호우잉 (戴厚英)의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를 보며
깊이 감동하고 아파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이 호우잉은 그새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제 심장은 더욱 녹슬었습니다.
우연히 집어든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 심장을 씻는 손 유에를 만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은 이 책을 번역하신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지
꼭 5년이 되는 날이네요. 심장이 필요없는 세계로 가신 두 분을 생각하며
다시 두 분의 문장을 읽습니다.
"나는 내 심장을 꺼내서 구석구석까지 조사해 보았다. 돌기된 부분에 한 군데
상처가 나서 심하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곳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수도꼭지로 갖고 가서 깨끗이 씻었다.
'상처를 어떻게 하면 좋아?' 나는 물었다.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놔두면 자연히 낫게 돼.' 호 젠후의 심장이 대답했다. 나는 심장을 가슴 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어무런 상처도 남지 않았다
나는 싱글벙글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어때요? 나, 멋지요. 자, 당신 심장도
씻어 줄께요.' 나는 과도를 그에게 갖다 댔다.
그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뭐라구? 내게 심장이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거야? 당신은 인정도 없나?'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럼 당신의 심장은?...'
(하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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