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습니다.
선물 받은 연필의 겉옷은 잉크 빛인데
그 옷을 벗기니 흰색과 빨간 색 속옷이 드러납니다.
그 속옷 아래엔 나무 속살이 있고, 그 속살은
검은 심을 싸고 있습니다.
심이 쓱쓱 미끄러지며 글자가 태어납니다,
시 시 시... 글 글 글...
연필을 깎을 때면 늘 같은 꿈을 꿉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시를 쓰고 싶다,
누군가를 살리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그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저는 여전히 같은 꿈을 꿉니다.
아마도 그 꿈은 제가 이곳을 떠날 때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그리고 그 이루어지지 않는 꿈 덕에
저는 계속 연필을 깎을 겁니다.
시시때때로 ‘너는 왜 그렇게 사니?’
핀잔을 들을 거고 저는 유쾌할 겁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는 건 매일 절망과
마주서는 일이지만 바로 그래서 유쾌합니다.
이룰 수 있는 꿈, 이루어진 꿈이 수반하는
온갖 부자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세상엔 이루어지는 꿈을 좇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을 꿈꾸던 초등학생들이
언젠가부터 의사, 공무원이 되고 싶다더니,
연예인, 스포츠스타, 유튜버를 거쳐, 이젠
‘현금 50억’을 갖는 게 꿈이라고 합니다.
현금 50억 원... 그 숫자가 품고 있는 자본주의적
가능성이 돈을 꿈으로 만든 것이겠지요.
‘현금 50억’을 갖고 나면, 그 아이들은 무엇을 할까요?
‘현금 100억’을 꿈꿀까요?
현금 50억을 꿈꾸는 아이들 중 몇이나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돈도 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꿈일까요?
돈을 좇는 사람의 연필은 무엇일까요?
잉크 색 옷을 입은 연필이 한마디로 답합니다.
‘모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