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어여쁜 부추 한 단을 샀습니다.
허리띠에 적힌 글자를 보니 양평 부추입니다.
왈칵 눈물이 납니다.
오년 전 아버지가 들어가 누우신 그 땅에서 자란 부추입니다.
꼿꼿한 푸른 잎은 그대로 아버지의 정신,
입안을 채우는 향기는 제 삶을 채워주신 아버지의 가르침입니다.
부추에 스민 아버지의 육신...
뵙고 싶지만 뵐 수 없고 만지고 싶지만 만질 수 없는 아버지.
양평 부추를 먹는 건 그리운 아버지를 먹는 일입니다.
아버지에게서 나온 제 속으로 아버지가 들어오십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허기
아버지 떠나신 후
끼니가 버겁더니
새벽 세 시 속 쓰리네
검버섯바나나 허겁지겁
삼키다 눈물나네
칠십구 일 전
허기에서 해방된
아버지가 보고 싶네
--김흥숙 시산문집 <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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