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노년 일기 34: 작은 병, 작은 다짐 (2020년 6월 20일)

divicom 2020. 6. 20. 08:25

산책을 하는데 무언가가 오른쪽 눈으로 날아들었습니다.

먼지인지 날벌레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심하게 아프지 않아 가던 길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집에 온 후 죽염 안약으로 소독하고 생수로 씻어내니

괜찮은 듯했습니다. 마침 끝내야 할 번역이 있어

몇 시간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있었습니다.

오른쪽 눈이 자꾸 거북해진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무시하고 번역을 끝냈습니다.

 

번역본을 보내고 나니 눈의 거북함이 괴로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래 눈꺼풀 안쪽이 벌겋더니 그 다음날부터는 화농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부위든 화농이 되어가는 동안은 괴롭지만

막상 화농이 되어 고름이 차면 고통이 줄어듭니다.

 

팔이나 다리처럼 제 손으로 고름을 제거할 수 있는 곳이면

병원에 갈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눈은 눈이니

가는 게 좋겠지요.

 

평생 다닌 공안과. 창구에는 두 명의 직원이 앉아 있는데 두 사람 다 사무적입니다.

오른쪽 사람의 사무적인 태도는 불쾌하지 않은데

왼쪽 사람의 태도는 불쾌합니다.  말투의 사소한 차이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사소한 것이 만드는 큰 차이를 생각합니다.

 

간호사인지 간호조무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말엔

높낮이가 없어 귀로는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는 시차를 두고

이해됩니다. 병원 사람들 중 의사의 말이 가장 이해하기 쉽습니다.

 

"피가 많이 나옵니다. 고름이 잘 나옵니다." 그의 말이 웃음을 자아냅니다.

초고도근시 눈에 안경도 렌즈도 쓸 수 없는 상태라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목소리와 말은 환자에게 믿음을 줍니다.

 

'수술'을 받은 게 목요일이고 오늘은 토요일.

겨우 이틀쯤 지났는데 한 일주일 지난 것 같습니다.

책을 읽지 못하니 그렇겠지만 다음 주부터는 책도 볼 수 있겠지요.

 

'생로병사'의 길에 놓여 있는 무수한 '병'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면, 좀 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그 의사처럼

웃음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