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아름다운서당 서재경 이사장 인터뷰(2020년 4월 4일)

divicom 2020. 4. 4. 11:00

사교를 좋아하지 않고 사회활동에 나서는 것도 피하려 하는 제가 유일하게 몸담고 있는 단체는

공익법인 아름다운서당입니다. 이 서당은 대학생들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로, 제가 존경하는 서재경 선배님이 만들어 운영하고 계십니다. 


아름다운서당은 후원금으로 운영되는데 후원금도 못 내는 제가 서당의 이사로 이름을 걸어놓은 건 

서 선배님 때문(혹은 덕분)입니다. 마침 매일경제 주말판에 서 선배님의 인터뷰가 실렸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Weekend Interview] `아름다운서당` 운영하는 청년멘토 서재경 이사장

세계는 넓고 할 일 많던 경험 살려
`세월호 세대` 위한 희망찾기 나섰죠



서재경 `아름다운서당` 이사장은 언제나 청년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면서 산다. 서 이사장이 `아름다운서당` 졸업생들이 선물한 액자를 들고 있다. 졸업생들은 자신들 얼굴을 모자이크해 서 이사장 얼굴을 만들었다.  [한주형 기자]
사진설명서재경 `아름다운서당` 이사장은 언제나 청년들과 함께 고민을 나누면서 산다. 서 이사장이 `아름다운서당` 졸업생들이 선물한 액자를 들고 있다. 졸업생들은 자신들 얼굴을 모자이크해 서 이사장 얼굴을 만들었다. [한주형 기자]
아름다운서당. 이름만 들어선 뭘 하는 곳인지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아마 인성과 교양, 직장인으로서 역량을 두루 갖춘 인재를 키워내고 싶은 설립자 욕심이 반영된 명칭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서당은 쉽게 말해 `취업 학교`다. 매년 선발된 대학생들이 약 1년간 강도 높은 교육을 이수하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로 성장한다.

2005년 제1기 졸업생 13명은 모두 원했던 곳 이상으로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까지 대학생 900명이 이곳을 거쳐 갔고, 여전히 상당히 높은 취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아름다운서당을 설립해 이끌고 있는 사람은 서재경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이다. 대우그룹에 20년 이상 몸담으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기획했고, 최고경영진까지 올랐던 그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대한 `정답`을 갖고 있었다. 은퇴 이후 주변을 돌아보니 취업난에 허덕이는 청년들이 보였고, 그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정답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한다. 

신문사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던 서 이사장은 정치·경제·사회 문제에 여전히 관심이 많다. 취업난도 그중 한 가지. 서 이사장은 대우그룹에서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보좌하면서 기업가 정신이 무엇인지 몸소 체험했다. 그는 지금 재계가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하고 기업가 정신이 퇴색했다고 진단했다. 

15년간 `아름다운서당`을 운영하며 대학생들 취업을 돕고, 그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있는 서재경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을 만나 다양한 얘기를 나눠봤다. 


―아름다운서당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아주 형편없이 가난한 집에서 나고 자라 이만큼 누리고 산 것만 해도 세상에 은혜를 입은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은혜는 갚아야 도리에 맞으니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찾아보다가 아름다운서당을 만들게 됐다. 2004년 처음 한 대학에 이 프로그램을 함께하자고 제안했는데,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다. 당시 제가 가르치는 대로만 공부해서 1년을 키우면 틀림없이 취업에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어떤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2005년 다른 대학에서 한 클래스를 모집해 1년간 공부를 시켰고, 졸업생 13명이 모두 원했던 기업보다 더 좋은 기업에 들어갔다. 그게 시작이었다. 

―어떤 것을 가르치나. 

▷수업만 따지면 10개월, 준비 과정까지 1년 코스다. 매주 토요일 수업을 진행하는데 오전에 인문학, 오후에는 경영학 수업을 한다. 특히 경영학은 케이스 스터디 중심으로 공부한다. 교수, 기업인 출신 등 각계 인사가 자원봉사로 강연에 참여한다. 올해에는 언론계나 장기적으로 선출직 공무원 등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사회반도 신설했다. 인문학은 공통으로 수업을 받고 경영학 대신 국가 어젠다에 대한 강의와 토론을 진행한다. 

―원하는 학생 누구나 수업을 받을 수 있나. 

▷매년 지원을 받아 정원을 선발한다. 3개 클래스에 총 50명 이내로 유지하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150명까지 규모를 키워봤는데, 아이들 한 명 한 명 특성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한 클래스에 15명 정도가 좋더라. 운영비는 졸업생들이 후배들을 위해 매달 보내는 후원금이 있고, 일반 독지가 중에서도 후원을 해주시는 분이 있다. SK네트웍스, 서울석유, 에쓰오일, 제이씨케미칼 등 기업에서 교실과 식사를 제공해주는 등 후원을 해주고 있다. 재단에 상근 직원도 없기 때문에 들어오는 돈은 100% 학생들에게 간다. 운영비 걱정은 없다. 

―그전에는 대우그룹에 오래 몸담으셨다. 

▷1973년 서울경제신문 기자로 시작해 1977년 대우그룹으로 갔다. 유신시대에 언론사보다 기업에서 외국 시장 개척에 일조하면 훨씬 보람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느지막이 대우그룹 중남미 본부인 대우파나마 대표로 나갔다. 

―고(故) 김우중 회장을 직접 보좌하면서 김 회장 책을 기획했다. 

▷1989년 추석 무렵 출간한 것으로 기억한다. 기획조정실에서 일하면서 김우중 회장이 그동안 언론에 기고한 글, 언론 인터뷰, 사내 메시지 등을 보니 훌륭한 내용이 아주 많았다. 제가 먼저 혼자 작업을 해보니 어느 정도 원고가 되더라. 그다음 김우중 회장한테 보고를 했더니 `기업인이 무슨 책을 내나. 건방지다고 욕먹는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이셨다. 

그때는 1987년 6·29 선언 이후 한국 사회가 노사 분규로 들끓고 있었다. 1988년이 올림픽인데 제대로 치를 수 있겠냐는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바로 앞에 선진국 문턱이 보이는데 여기서 잘못하면 다 주저앉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에 김우중 회장한테 `나라가 이렇게 위기로 가는데 아무도 얘기를 안 하니 열심히 살아온 기업인이 나서서 얘기해야 할 차례`라고 설득을 했다. 성공한 기업인이 더 전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는 게 이 시기에 필요할 것 같다고 하자 그가 생각을 바꿨다. 

―그 책(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은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삼촌이 사서 조카에게 주는 책. 교장이 학생들에게 사주는 책. 군부대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선물하는 책. 무슨 얘기냐면 당시 어른들이 하고 싶었던 얘기를 김우중 회장이 대신 해준 것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느냐. 여기서 더 열심히 하면 더 높이 갈 수 있지 않으냐`는 메시지였다. 간단하면서도 분명했고, 그 시점에 꼭 필요한 메시지였다. 6개월 만에 밀리언셀러가 됐다. 

―김우중 회장이 현역이었으면 어땠을까. 

▷지금 청년 실업 사태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으셨을 것이다. 경기는 사이클이 있고, 불황에 빠져 재고가 늘면 경영자는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채용을 줄이려고 한다. 대우그룹에서 매년 각 계열사 채용 계획을 종합해 보고가 올라왔다. 작년에 2000명을 뽑았는데 올해 1000명으로 규모가 줄면 김우중 회장은 2000명으로 채용 계획을 세워 다시 내려보냈다. 그리고는 사장단 회의를 소집해 이렇게 말했다. "채용 계획을 보니 너무 안일하게 경영한다. 우리가 언제 일에 사람을 맞췄나. 우리가 모범을 보이자. 인력 더 뽑고 일을 만들어내라. 일 찾는 게 사장들 할 일이지 않나." 

―지금 청년들이 이 얘기를 들으면 희망을 갖겠다.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청년이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희망이라는 마중물을 청년들에게 불어넣으면 동기부여가 돼 훨씬 많은 희망이 올라올 것 아닌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기업가 정신이 활성화되도록 하고,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아름다운서당을 하면서 청년들을 많이 만났을 텐데. 

▷지금 청년들은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말도 못하게 강하다. 이들은 세월호 세대다. 자기들이 직접 피해를 당했다는 생각이 있다. 교실에서 늘 했던 얘기가 어른 말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20대는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다. 저는 이들이 거의 임계점이 다다랐다고 본다. 청년들은 지금 앞이 안 보이는, 굉장히 답답한 절망감 속에 있다. 

―기성세대는 무엇을 해야 하나. 

▷우리가 할 일은 젊은이들에게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다는 것을 어떻게든 보여주고, 그렇게 느끼도록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믿으라고만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만 고집하지 말고 중소기업을 가라고 얘기만 한다. 중소기업 들어가도 충분히 좋은 모델이 나와주면 중소기업 가라 마라 얘기할 필요가 없는데, 그런 모델은 안 보여주고 중소기업 가라고만 한다. 완전히 청년 시각에서 청년 정책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청년 정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지금까지 시도한 것들은 진심으로 청년 문제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기보다 정치적 쇼케이스에 가까웠다고 본다. 청년 문제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대표성을 가진 청년 조직을 만들어 제대로 발굴해야 한다. 정부든 정당이든 아름다운서당에 요청이 온다면 아무 대가 없이 도와줄 생각도 있다. 

―아름다운서당은 언제까지 맡을 생각인가. 

▷제가 언제 물러나는 게 좋은 시점인지를 계속 생각하며 해오고 있다.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아무 때라도 물려줄 것이다. 그러고 나면 저는 또 할 일이 있을 것 같다. 

―또 무엇을 구상하고 계시나. 

▷제대로 된 정치인을 양성하는 `정치인 학교`를 구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에 올랐는데, 정치만은 후진성을 못 벗어나고 있다. 우리는 인재 영입이라는 이름으로 법조인, 지식인, 언론인 등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정치 무대에 올리고 있다. 정치가 경제 발목을 잡는다. 한참 일해야 할 젊은 창업 세대들이 은퇴를 선언한다. 한국에서 기업 못하겠다는 소리다. 

―구상이 얼마나 구체화됐나. 

▷스웨덴을 모델로 하고 있다. 봉사 정신과 리더십이 검증된 청년들에게 정책 입안 등 정치인이 하는 일을 가르치는 것이다. 특권을 내려놓고 국민에게 봉사하며 존경받는 정치인을 키워내고 싶다. 스웨덴에서 30년 이상 정치 분야를 연구한 한국인 교수와 함께 프로그램을 거의 완성했다. 뜻 있는 분의 참여도 기다리고 있다.
 

▶▶ He is… 

1947년 목포에서 태어났다.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대우그룹에 20여 년간 몸담으며 대우파나마 대표 등을 지냈다.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베스트셀러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기획했다. 2004년 아름다운서당을 설립해 대학생들 취업을 돕는 등 청년 멘토로 활약하고 있다. 

[전경운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