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도 내일이면 끝이 납니다.
고정희 시인은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 노래했는데
8월은 어떤 여백을 남길까요...
세상이 불처럼 달아올라 온 몸에서 뚝뚝 철철 눈물 같은 것이 흐르던 7월과 8월,
그래도 몸 안엔 아직 덜 흐른 물이 남았나 봅니다.
푸른 대추 알들과 어린 주먹 감들이 자꾸 눈물을 불러냅니다.
어느 깊이 들어앉은 절의 뒤안을 걷고 싶은 오늘입니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고정희 시전집2>, 또하나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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