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형제들 모두 아버지 유택에 갔을 텐데,
아버지 여기 계실 때 문턱이 닳도록 쫓아다녔던 저는
그냥 앉은 자리에 있습니다.
각기 살 만큼 살고 다른 곳으로 가는 이치는 알아도
정을 떼는 것은 상관 없이 힘들어 주름진 눈이 젖는 일이 흔합니다.
살고 죽는 것도, 가고 머무는 것,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모두 '공부'인데,
공부는 쉽지 않습니다.
젊은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은 김사인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에는
먼 길 떠나신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들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제 마음 같아 그 중 한 편을 아래에 옮겨둡니다.
다영씨, 고맙습니다.
공부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하겠지요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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