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낮의 길이(2018년 4월 10일)

divicom 2018. 4. 10. 21:46

학생 시절 과학 점수는 형편 없었지만 과학은 재미있습니다.

텔레비전의 디스커버리(Discovery)나 내쇼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채널을 자주 보는 이유입니다.


조금 전 경향신문 인터넷판에서 본 칼럼 '낮의 길이'도 재미있습니다.

우리 혈관의 길이가 10만킬로미터나 되다니!

인간의 망막에서 빛과 어둠을 감지하는 세포가 9천만 개에 육박한다니!


모르는 것이 많아 좋습니다. 모르는 것을 배우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아래에 내일 자 경향신문에 실린 김홍표 교수의 글을 옮겨둡니다. 



[과학의 한귀퉁이]낮의 길이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만물이 소생(蘇生)한다는 봄이다. 작년의 잎을 아직 매달고 있는 단풍나무도 새로이 자줏빛 잎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활짝 기지개를 펴는 식물과 달리 어떤 사람들은 봄에 아지랑이처럼 다소 무기력해진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춘곤증이라고 부르고 거기서 벗어나려 애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을 시나브로 지나 밤의 길이가 11시간 반보다 줄어들면 우리 뇌는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적게 만들어낸다. 밤의 길이가 긴 겨울에 멜라토닌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인간도 겨울에는 잠을 더 자는 게 생물학적으로 맞는 것 같다.

지구의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밤낮의 길이는 제각각이라 해도 하루의 길이는 24시간으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이 24시간을 주기로 인간의 생물학적 변화가 반복된다. 잠이 가장 대표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잠을 잘 때는 먹지 못하기 때문에 밤에는 소화를 담당하는 효소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이런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하루의 활동 주기를 결정하는 사령부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뇌 시상하부, 시교차상핵이라는 그 이름조차 생소한 곳에 있다. 약 2만개의 신경세포가 여기에 포진하고 있으면서 망막을 통해 들어온 빛의 세기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다른 동물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마주하는 외부 환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빛이다. 이 사실은 인간의 망막에서 색을 감지하는 세포가 450만개인 반면 빛과 어둠을 감지하는 세포가 9000만개에 육박한다는 저 숫자의 엄정한 차이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꽃이 피고 봄이 왔다는 것은 곧 낮의 길이가 길어졌다는 말이다. 햇볕이 더 강하고 더 오랫동안 내리쬐는 것이다. 이에 반응하여 우리의 신체는 체온이 올라가고 그에 따라 혈관이 확장된다. 5ℓ의 혈액이 돌아다니는 우리 혈관의 길이가 10만㎞라는 점을 상기해보자. 혈관이 아주 조금만 팽창해도 혈압은 떨어지게 된다. 그 결과 뇌로 가는 산소의 양도 줄어든다. 따라서 봄이 되면 몸이 나른하고 피곤한 춘곤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낮의 길이에 따라 신체가 반응하는 현상은 시차 적응과 비슷하다. 인간의 몸이 늘어난 햇빛에 적응하는 데 2~3주가 걸리기도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낮이 길어지면 우리 몸은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적게 만드는 대신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을 더 많이 만들어낸다. 좀 더 왕성하게 활동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빛을 찾아 나서고 활발하게 세로토닌을 만들어내면 일교차가 큰 환절기에 걸리기 쉬운 감염 질환도 피해갈 수 있다.

이렇듯 낮의 길이에 대응하여 행동이나 물질대사를 변화시키는 적응 방식은 동물, 식물은 말할 것도 없고 곰팡이, 세균 등 지구상 거의 모든 생명체가 보편적으로 취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밤과 낮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보기에 그것은 광합성으로 귀결된다. 밤이 되면 식물도 광합성을 멈추고 동물처럼 산소를 소모하며 호흡한다. 밤이 되면 식물이건 동물이건 모두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내보낸다. 하지만 해가 뜨면 식물과 조류는 이산화탄소를 포도당으로 전환시키면서 부산물로 산소를 방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산소를 감히 ‘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을 볼 수는 없겠지만 과거 먼 옛날 산소가 독성 물질이었던 적이 있었다. 눈에 보이는 생명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 얘기다. 따라서 낮에 만들어진 산소를 피하기 위해 세균들이 하루의 활동 주기(circadian rhythm)를 조절하는 ‘최초’의 체계를 발명했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사실 산소를 피하는 일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에 해당되는 천형과도 같다.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인간을 위시한 생명체들은 항산화제라는 물질을 만들어냈다. 항산화제에는 비타민 C와 같은 작은 물질이 있는 반면 단백질처럼 커다란 물질도 있다. 퍼록시리독신(peroxiredoxin)이라는 단백질은 광합성을 하는 남세균과 과일의 단맛을 좋아하는 초파리뿐만 아니라 쥐, 애기장대 등 거의 대부분의 생명체에 존재하며 빛의 길이에 따라 24시간을 주기로 그 양이 변화한다. 빛과 어둠은 무척 다양한 방식으로 생명 활동을 제어한다.

2017년 낮의 길이와 관련된 한 가지 흥미로운 연구가 ‘사이언스 중개 연구’라는 저널에 발표되었다. 낮에 입은 상처가 밤에 다친 상처보다 더 빨리 회복된다는 내용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밤이 아니라 낮에 화상을 입은 사람의 피부가 더 빨리 회복될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밤에 화상을 입은 사람의 상처가 회복되는 데 60%나 더 긴 시간이 걸렸다는 결과가 나온 까닭이다. 그러므로 부득이 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라 해도 가능하면 낮에 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가 곧바로 따라 나오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에 새겨진 상처도 밝고 꽃이 피는 봄에 더 빨리 회복될 수 있을까? 생물학적으로는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많이 분비되기 시작할 테니까. 하지만 그것뿐일까? 4월16일이 다가온다. 노란 리본은 가시광선을 감지하는 우리 망막 안의 세포를 따라 뇌에 그 모습을 새긴다.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이 길어지는 그 바다를 우리는 지긋이 응시할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4102100025&code=990100#csidx68f56b5816ed0ad9b55188ad6ac08b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