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종교가 인간을 버릴 때(2017년 12월 11일)

divicom 2017. 12. 11. 10:39

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어떤 사람에 대해 얘기합니다. 

머리는 좋은데 좋은 머리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쓴다고 합니다.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지만 그들의 상황이 나빠지면 다른 얼굴이 된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말합니다. "그 사람 교회 다니지요?" 

다른 사람이 "글쎄, 모르겠네, 왜?"하고 묻습니다. 

먼저 물었던 사람이 심상하게 말합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그렇잖아."

모두가 웃습니다, 신자들까지.


거의 평생 교회에 다니시다 권사로 이승을 떠나신 어머님은 제게 교회에 가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너는 착하니까 교회 나갈 필요 없어. 교회에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하신 적은 있습니다.

저는 능력은 없어도 착한 사람으로 살다 죽고 싶으니 어머님의 말씀이 큰 칭찬으로 들렸습니다.

가끔 저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 괴로워하다가 어머님의 말씀을 상기하며 신발끈을 고쳐 맵니다.


종교는 긴 역사를 가진 만큼 영광과 오욕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오늘 한국의 종교는 어떨까요? 영광의 길을 걷고 있을까요, 오욕의 역사를 쓰고 있을까요?

저는 종교의 신자가 될 생각은 없지만 흔들리지 않는, 착한 사람이고 싶다는 염원을 품고 

오늘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아래는 경향신문에 실린 이나영 교수의 글인데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 옮겨둡니다.


정동칼럼]종교가 인간을 버릴 때

이나영 | 중앙대 교수·사회학

모태신앙이었다. 교회는 놀이터이자 유치원이었고, 성경책이 동화책이었다. 전도사님과 목사님은 선생님이었으며 하나님은 아버지였다. 입버릇 같던 ‘아버지하나님’에 분노한 아버지의 꾸지람을 지금도 똑똑히 기억한다. 그래도 교회 가는 일이 즐거웠다. 어린 마음속의 예수님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 없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늘 사회적 약자에게 손 내미는 의롭고 친절하며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이었다. 부족하고 나약하고 어리석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셨으며 심지어 삼일 만에 부활하신 분 아닌가. 나는 그분을 존경했고 사랑했으며, 매일 만나고 싶었다. 어머니들은 식당에서 밥을 퍼주며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교회의 주요 보직은 아버지들만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엔 너무 어렸고 무엇보다 젠더관념이 없었다. 

성장한 이후 개인사에 변화가 생겨 천주교로 개종했다. 새롭게 외워야 할 복잡한 절차가 많았지만 학생운동을 하고 바티칸에 유학까지 다녀온 똑똑한 신부님의 말씀을 듣는 게 너무 좋았다. 세상을 따듯하게 바라보되 진지하게 비판할 수 있는 관점에 감명 받았다. 성당의 분위기는 엄숙했고 사람들은 경건했으며 겸손했다. 당시 나는 수사와 신부는 다 남성이고 여성은 왜 수녀만 되어야 하는지, 성당의 수많은 잡일들을 치르면서도 여성들은 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지 질문하지 못했다.

마음 한편 늘 꾸물거렸지만 해결되지 않았던 인생물음에 답을 구하고자 여성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이름 없는 존재로 살고 있나, 대학교육이 왜 여성들에겐 쓸모없는 것이 되는가, 왜 같은 인간인데 다른 평가와 처우를 받으며 당연하게 여기는가. 불공평한 세상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싶었다. 성당은 그만 다니게 되었지만, 서구 여성운동뿐 아니라 한국의 여성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접하면서 종교가 기여한 많은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안다. 한국 사회에 평등과 인권 감수성을 도입하고 민주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투쟁해 온 기독교와 천주교의 역사를. 조선 말기부터 성차별, 신분차별을 넘어 동등한 교육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던 이들을 기억한다. 여성에 대한 노동착취, 성착취, 인신매매, 봉건적 관습에 대해 서슴없이 일침을 가하며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용감한 종교인들을 기억한다. 엄혹하던 박정희 독재정권하에서도 그들은 여성노동운동을 지원하며 원자폭탄에 의해 희생된 조선인 배상운동을 벌이고 일본 남성들의 기생관광에 반대하며 폭압적 독재정권에 맞섰다. 1980년대 민주화과정에서는 누구보다 앞장서 최루탄을 맞고 공권력의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독재타도를 외치며 세상을 바꾸는 일에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한국의 민주화는 물론, 일본군 성노예제와 미군기지촌은 물론, 성폭력 당하고, 매매되고, 일상에서 두들겨 맞고 인권유린을 당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들리는 데 더 오랜 세월이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특정 집단을 저주하고, 낙인찍고, 차별을 정당화하며, 법적 죄와 도덕적 책임까지 지우는 일에 앞장서는 이들이 바로 같은 종교를 믿는 자들이라는 사실에. 믿을 수가 없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두 팔 활짝 벌리던 그 장소, 경찰에 쫓기던 ‘운동권’ 학생들에게 문을 열어 주던 바로 그 자유와 해방의 장소에서, 똑같은 모자를 쓰신 분들이 여성억압을 정당화하는 서명지에 사인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분노한다. 성평등이 성소수자를 인정하는 용어라며 여성가족부에 난입해 농성을 벌이는 자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허용법이라며 온갖 반대집회를 개최하는 이들, 성관계를 통제할 수도, 아이를 낳을 수도, 안전하게 기를 수도 없는 세상에서 임신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데 앞장서는 자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에. 살아 있는 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이들은 진정 종교인인가, 세속화되고 제도화된 이익집단인가, 약자를 탄압하는 권력집단인가. 아님, 이러한 현상 자체가 더 이상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소멸될 위기에 처한 종교의 역설적 위상을 증명하는 것인가.

종교가 단지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존재할 때, 혐오집단을 등에 업고 사회적 약자들을 심판하고 버릴 때, 살아계신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실 것인가. ‘그때가 언제 올지 모르나’ ‘정의를 실천’하고 ‘항상 깨어 있으라’던 하나님의 말씀은, 더불어 살아감의 가치를 깨닫고 차별을 야기하는 불평등의 축을 바로잡으며, 공공의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종교가 존재해야 함을 일깨우는 것 아닌가. 한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들이 그런 의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 왔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불의에 맞서 정의를 실천하는 데 다시 앞장서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드린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102106005&code=990308#csidxdac22ba7c9615b18781a1d4b733825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