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탈북 병사의 기생충과 인권 (2017년 11월 24일)

divicom 2017. 11. 24. 10:30

지난 13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통해 귀순한 북한 병사의 치료를 둘러싸고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치료과정에서 주치의인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가 병사 몸안의 기생충을 언급했고, 

정의당의 김종대 의원이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것 아니냐고 지적하면서 논란이 촉발됐습니다.


결국 이국종 교수가 텔레비전(jtbc) 뉴스에 나와 왜 기생충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고, 

김종대 의원과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함께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저는 정의당과 아무런 상관도 없고 김종대 의원을 만난 적도 없지만 북한 병사의 기생충에 관해 

상세한 보도가 나왔을 때는 김 의원과 똑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몸안에 좋은 것이 있다면 몰라도 

아무도 자랑하고 싶어 하지 않는 기생충이 많다는 것을 저렇게 자세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을까, 

저 환자가 나중에라도 저 사실을 알게 되면 부끄러워 하고 서운해 하지 않을까 우려했습니다. 


나중에 jtbc 뉴스에서 이국종 교수의 설명을 듣고 왜 그렇게 기생충 얘기를 자세히 했었는지 알게 되긴 했지만 

기생충 보도가 지나치게 크고 상세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고, 그 문제를 지적한 김종대 의원의 인권에 대한

높은 감수성은 박수를 받아야지 비난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나라가 아닌 곳, 사람들이 좀 덜 정치적인 곳, 음모의 가능성이 일상화되지 않은 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어도 이국종 교수가 기생충 얘기를 그렇게 자세히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덴만작전 수행 중에 중상을 입은 석해균 선장을 혼신의 노력으로 살려놓고도, 

중상도 아닌 사람을 데려다 수술 쇼를 했다는 음해를 받은 경험이 

이 교수로 하여금 기생충 얘기를 하게 했을 거라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의 영웅 거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 놀라운 일을 해내면 그 사람을 칭찬하고 본받으려 

하는 대신, 꼬투리 잡을 것은 없는지 찾아내려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위기가 그러니 뛰어난 한국인들이 

이 나라에서 뭔가를 하기보다 나라 밖으로 나가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는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하향 평준화' 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참 한심하고 안타깝습니다. 

아래는 오늘 경향신문 사설입니다.    



탈북 병사의 인권 논란이 한국 사회에 던진 교훈


판문점 탈북 병사의 치료를 둘러싼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중증외상센터장)와 정의당 김종대 의원 간의 설전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먼저 결코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짚을 필요가 있다. 병사는 탈북과정에서 어깨와 허벅지, 폐와 복부 등에 5발의 총상을 입었고, 병원 이송 당시 맥박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중태였다. 이국종 교수가 병사 체내의 기생충을 언급한 것은 응급수술을 받긴 했지만 언제든 위중한 상태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려던 뜻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가뜩이나 의료계로부터 질시를 받아왔고, 심지어 ‘중증환자도 아닌 석해균 선장을 데려와 수술하는 쇼를 했다’는 음해도 난무했다. 그런 그가 “환자를 간신히 살렸는데 엉뚱하게 기생충이 수술부위를 뚫고 나와 문제가 생기면 어떤 비난을 감수할지 모른다고 항변한 점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김종대 의원의 ‘환자 프라이버시 침해’ 지적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김 의원은 23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어떤 분들은 탈북인들과 식사하기가 꺼림칙하다고 한다며 ‘기생충 논란’의 파장을 우려했다. 북한에 대한 혐오 증폭은 둘째 치고, 가뜩이나 편견 속에 살아가는 탈북인들이 받을 상처가 우선 걱정이다. 김 의원이 방점을 두려던 것은 환자치료 상황에 대한 국가의 무리한 개입과 언론의 선정적 보도다. 다만 치료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문제를 제기한 것은 경솔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논란이 첨예화된 데는 이념 갈등을 유발한 일부 언론의 책임도 있다. 일각에선 ‘북한인권에 눈감는 진보’라는 엉뚱한 인식을 심어줄 절호의 기회라고 간주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행히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김 의원이 사과의 뜻을 밝혔으니 이것으로 일단락되길 희망한다.

대신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교수의 발언을 통해 불거진 중증응급의료의 열악한 현실이다. 중증외상환자 대다수는 생산·일용직, 영세자영업자 같은 기층민들이다. 사회안전망이나 다름없지만 의료수가 보상이 미흡한 데다 건강보험 급여비를 청구하면 삭감되기 일쑤다. 이들이 병원을 찾지 못해 길거리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면밀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이 교수의 22일 기자회견 발언은 울림이 크다. “위험한 일로 다쳤을 때 ‘골든아워’ 내에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는 나라에 살기 위해 북한군인은 사선을 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232038025&code=990101#csidxd7884c22c71a2bc88f594dbb9a2dc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