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싸움 같았던 여름 끝에 선물처럼 갑자기 온 가을,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발등의 불'을 꺼야 하는 사람들은 하늘을 올려다볼 시간조차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싼 월세 방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에겐 아름다운 가을 하늘마저 잔인해 보일지 모릅니다.
힘겨운 방 찾기를 멀리서 내려다보기만 할 뿐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니까요.
인생의 힘겨움을 겪다보면 늘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게 됩니다.
불행과 고통에는 끝이 없으니 이 정도의 고통을 겪는 것이 다행일지 모릅니다.
남들은 다 편해 보여도 그렇진 않을 겁니다.
어제 먼 곳의 친구가 보낸 이메일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본인은 매일 자살 욕구와 싸우며 살고 있는데 남들은 모두 '넌 참 행복해 보인다, 네가 부럽다'고 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tbs FM95.1MHz)'에서는 정든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거처를 옮기는 '이사',
개강한 대학에 돌아온 대학생들과 젊은이들, 잊을 수 없는 노래꾼 김광석... 그리고 우리가 잃어 버린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과 함께 하는 '영화 읽기'에서는 '킬러의 보디가드', '아토믹 블론드',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가수 김광석의 삶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김광석'을 소개했는데, 그 중에서도 '김광석'을 보고 싶습니다. 영화 '다이빙벨'을 연출했던 이상호 감독이 김광석의 '자살'에 대한 의혹을 파헤쳤다니 보고 싶은 겁니다. 1996년
1월 6일에 사망한 김광석, 그의 죽음에 대해 재수사를 촉구하는 '김광석법' 입법을 위한 온라인 청원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 하는 '책방 산책'에서는 신현림 시인의 새 시집 <반지하 앨리스>와, 미국 심리학자 줄리언 제인스의 <의식의 기원>을 소개했습니다. 권태현 씨가 <반지하 앨리스>의 몇 구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오늘만큼은 함께 있고 싶다'는 제목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악수밖에 안 했는데
내 몸에서 살다 간 듯이
당신 손자국이 남았다
딱딱한 빵처럼 당신 손이 슬펐다
위의 구절도 슬프지만 '당신 없는 가을'의 구절도 그 못지않게 슬픕니다.
꽃이 춤추려 바람이 부네
쌀이 익으려 불이 꽃피고
나비와 모란을 그려
이쁜 부채를 선물하려는데
당신이 없네
당신이 없는 나날이네
<의식의 기원>에서는 인간에겐 처음부터 의식이 있었던 게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신의 음성'을 듣고 따라하던 인간이 우뇌의 기능을 상실하고 문자를 쓰게 되면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 청각 능력이 줄고 거기에 해당하는 뇌 영역도 퇴화됐을 거라는 것이지요. 저로선 '신의 목소리'를 '마음의 소리'로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합니다.
'문화가 산책' 시간에 소개한 행사 중에서는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13일부터 19일까지 열릴 네팔 청소년들의 그림 전시회를 보고 싶습니다. 이 청소년들은 엄홍길휴먼재단이 네팔에 세운 학교 학생들입니다. 성남아트센터
큐브미술관에서는 'Missing'이라는 제목의 전시회가 진행 중인데, 멸종된 동물과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기록을 작품으로 보면서 인간과 자연을 생각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케이블채널 오락프로에서 '쇼'를 하고 있지만, 성남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쇼' 이상의 깊이를 보여 주면 좋겠습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은 '고추하다'라는 단어로 끝맺었습니다. 요즘 골목마다 빨간 고추 말리기가 한창이지만
이 단어는 그 고추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사실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 비교하며 생각하다'를 뜻합니다.
오늘 들려드린 노래의 명단은 tbs 홈페이지(tbs.seoul.kr) '즐거운 산책...' 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제 글 '대학생'을 옮겨둡니다.
대학생
대학이 개강하니 동네가 살아납니다.
젊은 얼굴은 반짝이지만 마음은 얼굴과 다를 것 같습니다.
최근에 대학생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낮고,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제 젊은 시절도 다르지 않았는데요,
현실은 피곤하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기 싫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낯선 동네를 떠돌다 보면
부모님이 부자인 동급생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산다는 건 무얼까’ ‘이렇게 힘들게 살 필요가 있을까’
끝없는 질문에 시달리는 저를 위로한 건 책 속의 친구들이었습니다.
어느 시대, 누구의 삶도 쉬운 적이 없었다는 걸
그 친구들 덕에 알았습니다.
현재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비관으로 괴로운 젊은이들...
그들에게도 꼭 그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보편성을 일깨워 위로해주는
진짜 친구를 꼭 찾아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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