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고 한낮에는 덥고...
사람은 괴로워도 논밭에서 익어가는 것들이 있으니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더워도 가을... 오랜만에 나간 인사동엔 사람이 많았습니다.
오래 전과 똑같은 맛을 내는 솥밥집에서 어머니와 아우와 점심을 먹고
북촌길을 걷다가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tbs FM 95.1 MHz)'를 들으시던 어머니가
언젠가부터 스마트폰에 문제가 있어 방송을 듣지 못한다고 서운해 하셨는데
엊그제 막내동생이 손을 봐주어 오늘 오랜만에 방송을 들으셨다며 기뻐하셨습니다.
행복이 배가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누구 못지않게 지적이지만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꺼려 하십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자신의 글씨가 너무 못나고 마음 속 말을 글로 옮길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어머니께 쓴 편지를 보시고 "너는 마음 속 말을 이렇게 글로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하고 칭찬겸 탄식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9월 8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문해의날'이고, 9월은 우리 교육부가 정한 '문해의 달'입니다.
얼마 전 '문해의 달'을 기념해 열린 전국 성인 문해교육시화전에서 일흔다섯 살 조남순 씨의 시 '사십 년 전 편지'가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십 년 전 내 아들 군대에서 보낸 편지/언젠가는 읽고 싶어 싸움하듯 글 배웠다.'로 시작하는 시입니다. 가을은 편지를 쓰는 계절입니다. 편지를 쓰고 싶은데 쓸 수 없어 슬픈 사람이 없으면 좋겠는데,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264만 명이나 된다니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에서는 편지와 '가을의 기도'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과 함께 하는 '영화 읽기'에서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그것'과, 8번의 사고를
당하고도 용케 살아 아홉 살이 된 소년의 비밀을 그린 '나인스 라이프', 김어준 씨가 제작하고 시사IN의 주진우 기자가 주연해 이명박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적한 다큐 '저수지 게임', 김영하 씨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살인자의
기억법'을 소개했는데, 그 중에서도 '저수지 게임'을 보고 싶습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 하는 '책방 산책'에서는 만화가 김보통 씨의 산문집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와,
사회심리학자 엘리스 보이스의 <불안을 다스리는 도구 상자>를 읽었습니다. 김보통 씨는 아들이 대기업에
취직하길 바라셨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대기업에 들어갔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만두고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만화가로 성공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는 김보통 씨와 같은 효자가 많지만, 아버지도 아들도 처음 살아보는 인생입니다. 효도도 좋지만 자신의 마음이 가고 싶어 하는 길로 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엘리스 보이스는 하고 싶은 일을 앞두고 망설이는 이유는 '부정적 결과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라 말하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합니다. 또 '발전적인 고민이 아닌 자기비판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면 어서 빠져나오라'고 합니다. 글쎄요, 요즘에도 지나치게 '자기비판적인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은가요? 제가 보기엔 '자기비판적인' 사람보다 '자기애(愛)'에 빠진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만.
'문화가 산책'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천 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택시운전사'가 90회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부문에 한국을 대표해 출품된다는 소식과, 파주 출판도시 일대에서 15일부터 17일까지 파주 북소리 축게자 열린다는 소식, 전쟁기념관에서 병자호란 종전 380주년을 기념하는 '병자호란, 그 기억과 반성' 전시회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은 '무하다'라는 말로 마쳤습니다. '무하다'는 '없다'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니, '무하다'의 '무'는 '없을 無'자이겠지요?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제 글 '가을의 기도'를 옮겨둡니다. 오늘 들려드린 노래의 명단은 tbs홈페이지
(tbs.seoul.kr) '즐거운 산책...' 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을의 기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부니
김현승 시인의 시 ‘가을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모국어’라는 말이 또 다른 글을 불러옵니다.
“내생에도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고 싶다.
누가 뭐라 한대도 모국어에 대한 애착 때문에
나는 이 나라를 버릴 수 없다...”
2010년에 돌아가신 법정스님은 원하시던 대로
다시 한반도에 태어나셨을까요?
종교에 상관없이 폭넓은 사랑과 존경을 받던 법정스님과
목사 아버지를 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현승 시인이
오늘 이곳에 계셨다면 어떤 기도를 하셨을까요?
한 모국어를 쓰는 남북한의 주민들이 반갑게 만나는 날,
그날이 어서 오라고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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