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즐거운 산책

매미, 가을, 기도, 그리고 '우당 6형제'

divicom 2017. 8. 13. 10:26

이른 아침 문득 세상이 조용하니 가슴이 철렁합니다. 매미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요?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에서 묘사한 봄도 이렇게 조용했겠지요? 새, 꽃, 나무, 곤충...

온갖 친구들이 사라진 침묵 세상,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다행히 삼십 분쯤 지나니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제창과 합창, 공기를 채우는 그들의 목소리에 

덩달아 명랑해지지만 곧 저 소리를 듣지 못하겠구나 생각하니 안타깝습니다. 부디 모두 뜻을 이루고 땅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가을은 죽어가는 것이 많은 시간, 죽음을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가을은 기도의 시간입니다.  

오늘 아침 '즐거운 산책 김흥숙입니다(tbs FM95.1MHz)'에서는 '기도'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흔히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되지만, 그것은 '기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기도'의 다른 이름은 '사랑'...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합니다.


박혜은 맥스무비 편집장과 함께 하는 '영화 읽기'에서는 '벨과 세바스찬, 계속되는 모험' '청년 경찰' 

'애나벨: 인형의 주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소개했는데, 그 중에서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보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맨부커상을 받은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어린 시절에 사랑했던 두 사람이 노년에 다시 만나는 얘기를 다룬다고 합니다. 제게는 이런 추억이 없지만 주인공 남자가 런던에서 빈티지 카메라 상점을 운영한다니 적어도 오래된 도시와 오래된 카메라를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권태현 출판평론가와 함께 하는 '책방 산책'에서는 토머스 W. 호지킨슨과 휴버트 반 덴 베르그가 함께 쓴 <잡담의 인문학>과, 대만대학교 사회학 교수 쑨중싱의 인기 강의 내용을 책으로 만든 <사랑을 권함>을 소개했습니다. 

앞의 두 영국 작가는 '교양 있어 보이게 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을 내 유명해진 사람들입니다. 요즘엔 직접 독서하고 사유하고 경험해서 교양인이 되려 하는 사람은 드물고, 가능하면 적은 노력으로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려 하는 

사람, 교양 있어 보이려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시끄러워집니다.


'문화가 산책'에서 소개한 행사 중에서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당 6형제 전시회 '민국의 길, 

자유의 길'을 보고 싶습니다. 우당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 --건영, 석영, 철영, 시영, 호영--은 1905년 을사늑약 

후 이 나라를 떠나 평생 독립운동에 헌신했는데, 이 전시에서는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 선생이 서간도 망명과 

독립운동을 기록한 <서간도 시종기>, 6형제가 세운 신흥무관학교의 교과서 등 귀한 자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전시가 10월 15일까지 계속된다니 꼭 한 번 가봐야겠습니다.


오늘 '즐거운 산책...'은 '대추하다'라는 단어로 마쳤습니다. '대추하다'는 '가을을 기다리다'를 뜻합니다. 요즘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푸른 대추들이 조롱조롱 달린 게 보입니다. 대추는 저렇게 익어가는데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요?

아래에 '들여다보기'에서 읽어드린 제 글 '문을 열면'을 옮겨둡니다. 오늘 들려드린 노래의 명단은 tbs 홈페이지

(tbs.seoul.kr) '즐거운 산책...'방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문을 열면

 

더운 밤 창문을 열어 놓고 자다 보니

예전에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됐습니다.

 

한국인의 수면 시간이 매우 짧다는 말은 들었지만

밤에 돌아다니는 사람과 오토바이가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미와 귀뚜라미가 함께 울 수 있다는 것도 몰랐고

달빛이 책을 읽을 정도로 밝을 수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창문 두 쪽을 열어둔 것뿐인데

이렇게 여러 가지를 알게 됐으니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살면

새로이 알게 되는 게 얼마나 많을까요?

 

학교 교육을 받기 어렵던 옛날에

오히려 현명한 사람이 많았던 건

늘 대문을 열어두고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