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박근혜의 비유법(2016년 2월 19일)

divicom 2016. 2. 19. 13:03

어제 이 블로그의 '나의 이야기'에 '대통령의 실언'이라는 글을 썼는데, 오늘 아침 경향신문의 김민아 논설위원도

'여적'이라는 칼럼에 비슷한 취지의 글을 썼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한 번 읽어보시지요.


[여적] 박근혜의  비유법

김민아 논설위원 makim@kyunghyang.com

미국 메릴랜드주의 소규모 가톨릭계 대학인 마운트세인트메리스대는 지금 논쟁 중이다. 지난달 학보 ‘마운틴 에코’가 폭로한 사이먼 뉴먼 총장의 e메일 때문이다. 뉴먼 총장은 일부 교수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여러분은 학생들을 사랑스러운 토끼처럼 생각해서 어렵겠지만, 그래선 안된다. 물에 빠진 토끼는 머리에 총을 쏴서 그대로 익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학업 문제 등으로 중도탈락 가능성이 있는 신입생들을 보듬는 대신 쫓아내자는 것이다. 그는 “(입학 직후인) 9월25일까지 20~25명이 떠나도록 하는 게 단기 목표다. 이렇게 되면 재등록률은 4~5%포인트 올라갈 것”이라고도 했다. 입학 직후 그만두는 학생은 공식 중퇴자로 기록되지 않는다. 반면 2학년 진급 시 포기하면 중퇴자로 기록돼 대학순위 평가의 중요 지표인 ‘재등록률’을 끌어내리게 된다. 일부 교수들은 뉴먼 총장의 사임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보내고, 재단이사회는 뉴먼의 발언을 “부적절한 비유”라고 비판했다.

부적절한 비유는 한국에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 시스템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과 관련해 “일단 모두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려내야 할 규제만 살려두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에도 규제를 ‘암 덩어리’ ‘원수’에 비유하고 “단두대에 올려 처리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가도 너무 나갔다. 많은 시민이 대통령 발언을 듣자마자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당사자인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한 페이스북 사용자는 “9·11테러 2년 후 미국 대통령이 ‘규제, 빌딩에 몰아넣고 무너뜨린 후 살릴 것만 살려야’라고 말했다고 상상해보라”고 일갈했다.

박 대통령은 2014년 5월19일 세월호 참사 관련 담화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서 겪은 고통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의 눈물이 진심이었다면 이태도 채 지나지 않아 이토록 모진 비유를 할 수는 없다. 세월호는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있다. 세월호 속에는 아직도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