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건강진단, 필요한가?(2015년 10월 2일)

divicom 2015. 10. 2. 10:25

보름 전 아흔 한 살을 일기로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저도 병원이나 건강진단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노인들의 

경우는 건강진단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절제하고 관리하면서 살다가 죽을 때가 되면 죽는 것이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운 삶과 죽음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침 어제 자유칼럼에 '아흔을 넘긴 현역'이신 황경춘 선생님이 건강진단에 관한 글을 쓰셨기에 아래에 옮겨둡니다. 건강진단은 의료의 산업화와 건강염려증이 낳은 낭비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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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진단의 적정 기준은?

2015.10.01


젊을 때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어 병원 신세지는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70대에 들어서면서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서서히 노인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종로 5가 의료기구 가게에서 가정용 혈압계를 산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수축기 혈압 수치가 140을 넘을 때가 많아, 하루는 친구 소개로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네 병원을 찾았습니다. 노인병원이란 간판의 그 병원을 찾는 환자는 하나같이 노인들이었습니다.  이상한 것은 측정한 혈압수치를 보고 문진이나 주의사항은 별 없이 곧장 처방전을 써주었으며, 진찰료는 무료였습니다. 친구 말로는 자기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병원 경영은 정부와 제약사 등에서 받는 보조금으로 한다고 들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일 년 가까이 그 병원에서 공짜 처방전을 받아, 병원 건물 가까이에 있는 약국에서 처방전에 적혀 있는 약을 사 먹었습니다. 그 사이 원장이 한 번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병원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친구에 의하면, 이사 간 것도 아니고 완전히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신문지상에서 면허를 빌려 노인을 상대로 한 불법 의료행위를 하는 병원이 많이 적발되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요즘 각 방송매체에는 건강에 관한 고정 프로가 있어, 두세 사람의 의사가 출연하여 시청자의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이렇게 방송 건강 프로나 토크쇼에 나오는 의사를 ‘쇼 닥터’라 하며, 그 수가 50명을 넘는다고 최근 어느 방송 프로에서 들었습니다. 이 ‘쇼 닥터’ 중에는 특정 제약사 제품을 간접적으로 선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하여 많은 의료 종사자의 초인적 봉사활동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의료계의 추악한 면도 언론에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의료 단체나 제약회사와 정부 보건당국 사이의 알력이나 유착(癒着)도 세상에 많이 알려졌습니다. 불미한 의료 행위로 인한 사건도 보도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의료기술의 우수성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노인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요즘, 치매를 비롯한 노인성 질환, 환자의 과잉진료와 과잉연명 등, 우리가 맞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습니다.

영리를 떠나, 의료계와 사회가 진지하게 문제해결에 머리를 맞대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의료계 소식이 많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의사에 죽임을 당하지 않는 47가지 수칙’이라는 괴상한 제목의 책이 2013년 일본에서 100만 부를 돌파하는 밀리언셀러가 되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게이오(慶應)대 출신 의사 곤도 마코토(近藤誠) 씨였습니다. 1920년에 창립된 게이오대는 사립대학으로는 일본 최초로 의학부를 개설한 전통 있는 학교입니다.

X-선치료를 전공한 곤도 씨는 1983년에 일본 최초의 유방을 보존하는 유방암 치료로, 자기 누이를 완치시켜 일본 의학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그 후, 암과 암치료에 관한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였으며, 1995년에는 일본 최대 월간 종합지 문예춘추(文藝春秋)에 10회에 걸친 암 치료 기사를 연재하여, 독자 투표에 의한 그해의 독자상(讀者賞)을 받았습니다. 암 세포와 싸우지 말라, 항암제는 암 세포보다 인체에 더욱 해롭다는 게 그의 독특한 이론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번에는 일반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 관한 책을 써, 많은 독자의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의학계에서는 그를 이단자(異端者)로 취급하고 그의 암에 관한 이론과 의사 대 환자 관계 개선론 등을 통박했습니다. 특히 그는 의사와 제약회사 간의 유착설을 제기해 의사회와 제약회사로부터 많은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느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발언도 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의료도 산업입니다. 지금 인구는 줄고 있습니다만, 의사의 수는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돈을 벌려면, 돈벌이 대상을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그 대상에 건강진단과 정밀검사가 있지요. 그때, 보통으로 해서는 환자가 불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건강기준치를 낮추어서 환자 수를 불리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예가, 혈압이나 콜레스테롤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아메리카나 아일랜드에서는 건강진단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수명연장에 득이 안 된다는 확실한 학술자료가 이미 나와 있으며, 일본의 의사들도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의사들이 학문의 길을 벗어나, ‘장사(商業)’에 열중하고, 환자가 그 피해자로 나타나고 있는 거지요.”

곤도 의사 이론을 추종하는 의료계 인사들은, 지금의 신체검사 기준치는 옛날 것으로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의 검진 가이드라인은 2012년에 많이 개정되었지만, 실지로는 아직 거의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원래, 일본동맥경화학회의 의사들이 들고일어나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강연회 등에서도 그들은 침묵합니다. 제약회사가 강연회 스폰서이니까 그렇겠지요. 이것이 최대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고 한 여의사도 이 주간지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어느 의사 둘이 함께 쓴 '건강진단이 병을 만든다'가 인용한 기준치에서는 60세 남성의 경우, 수축기의 허용 혈압 수치는 95-165, 식전 당뇨 수치는 82~116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반면, 2013년의 일본 후생성 기준치에서 허용 혈압 수치는 90~134, 혈당 수치는 65~109로 되어 있습니다. 

곤도 씨에 의하면 정밀검사를 하면 할수록 ‘이상(異常)’이 많아진다는 이론입니다. 즉 한 항목만 검가하면 95%가 정상으로 나타나는데, 20항목을 검사하면 기준치내에 드는 사람은 35.8%이고, 30항목 검사 시의 정상 건강인은 21.5%라는 확률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작년에 게이오대를 정년퇴직해 자신의 암연구소 경영과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는 곤도 씨와 같은 ‘이단’ 이론을 펴는 의사의 견해를 우리 의료계와 일반인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