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밥상에서 세상으로> 서평(2015년 10월 8일)

divicom 2015. 10. 8. 12:23

지난 5일 오마이뉴스의 김학현 기자님이 제 졸저 <밥상에서 세상으로>에 대한 평을 써주신 것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책에 대해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써주신 김 기자님께 감사하고 송구합니다. 김 기자님의 기사를 전재해도 되는 건지 모르지만 일단 여기 옮겨둡니다. 기사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48633&CMPT_CD=P0001



국민 아닌 '궁민'의 나라... "지나친 애국, 건강 해친다"

[책 뒤안길] 참살이 가르치는 <밥상에서 세상으로>"지나친 애국은 건강을 해친다."

여보! 저자의 아버지가 했다는 말이라오. <밥상에서 세상으로>을 쓴 김흥숙씨의 아버지요. 그렇게 이름난 분이 아니어서 책을 다 읽고도 그분 존함은 떠오르지 않소. 저자가 기자 시절에 나라에 대한 걱정으로 분노하고 한숨 쉬다 결국 소화불량으로 고생할 때 들려주셨다는 말이오.

참으로 적당한 말인 듯하오. 요샌 '적당하다'는 말이 '대충 아무렇게나 하다'란 뜻으로 쓰여 '적합하다'고 해야 하지만 말이오. 아무튼, 요새 애국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지요. 진짜 애국자는 길거리에 있고, 가짜 애국자는 '-대, -당, -원, -관' 이런 건물 안에 들어 있으니 말이오. 진짜 애국자의 말은 묻히고 가짜 애국자의 큰소리는 TV에서 시간마다 방영하니 말이오.

내게 '아버지'... 그에게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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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상에서 세상으로> (김흥숙 지음 / 살림터 펴냄 / 2015.09 / 1만3000원)
ⓒ 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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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아버지가 내가 세상에 나온 지 일곱 달 되어 돌아가셨기에 늘 "나는 아버지가 없어서 더 좋다, 아버지의 악한 영향력을 받지 않아서 좋다,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버지가 있지 않으냐"며 허세를 떨었던 거 알죠?

그야말로 허세였다오. 때로 남들이 달려가 품에 안기는 그런 아버지가 없어 마음 허전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아버지를 느낀 적이 없기에 난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오. 혹 아이들에게 아버지 노릇을 잘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를 점검할 때도 잦고요. 아버지가 없어 아버지 노릇을 못한다고 자책하던 내게 그럴 필요 없다고 하네요. 책이.

"좋은 부모를 만나는 건 '운'이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건 '노력'이고,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 사람도 좋은 부모가 될 수는 있습니다." - <밥상에서 세상으로> 본문 8쪽 중에서

여보! 나름 노력한다고 하지만 그게 맞는 건지 지금도 모르겠소. 아이들을 거의 다 키워낸 지금도 말이오. 하지만 우리 같이 계속 노력해 봅시다. 시집간 딸내미 A/S 들어오지 않도록. 장가들일 아들 녀석 "부모가 내게 해 준 게 뭔데?"라고 하지 않도록.

저자는 밥상머리 교육을 참 늘어지게 자랑하고 있소. 늘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참살이 교육을 했다고 하오. "가정은 있으나 가정교육은 없고, 성적은 있으나 공부는 없고, 지식은 있으나 상식은 없다"는 우리네 인생살이에 그의 아버지 같은 아버지 몇만 있어도 이 나라가 이리 가진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만드오.

여보! 일테면 이런 것들이오. 가정이 즐거운 학교이고 스승은 아버지고 제자는 저자를 비롯한 자녀들이오. 그 아버지가 세상의 지식 많은 스승이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 줬다고. 산등성이 올라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래를 내려다보며, "이담에 네가 어른이 되면 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쳤소. 그의 아버지는.

좋아하는 일에 너무 깊이 빠져있으면, "좋아서 하는 일도 건강을 해친다"고 말하고, 일이 잘되어 기뻐할 때는, "역경에 인내는 누구나 하지만 순경(順境)에 근신은 아무나 못한다"고 가르쳤소. 부모는 '선택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고 '선택을 돕는 사람'이라 하오.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드오.

저자의 아버지는 오래 사시면서 저자 곁에서 가르침을 줬소. 내 아버지는 일찍 가셔서 악영향을 끼치지 않으므로 교훈을 주었소. 요즘 세상에는 부모의 악영향 때문에 비뚤어지는 자녀들도 많지 않소. 그러니 나도 저자만큼 아버지를 잘 둔 사람이오. 저자의 표현대로 하면 운이 좋은 것이오.

'궁민'의 나라에서 애국... 쉽지 않다

우리들의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뭔지 아시오? '국민'이란 단어라오. '국민'인지 '궁민(빈곤한 백성)'인지 때로 그 발음이 희한하게 같아 헛갈리긴 하지만 말이오. 혹 '국민'이라 말하면서 '궁민' 대우하면 어쩌나 염려될 때가 가끔은 있소.

'국민이 잘 사는 나라, 국민의 뜻, 대다수의 국민, 국민경선제...' 하여튼 '국민' 우려먹는 말이 참 여러 각도로 쓰이고 있소. 하다 하다 '국민경선 안심 번호'까지 나왔다오. 허. 그런데 이 국민이란 말,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묻는 사람은 없소. 이게 우리말이 아니라오.

"그러나 '국민'은 본디 우리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 제 나라 사람들을 부르던 '황국신민(皇國臣民)'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황국신민'은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의 신하된 백성'을 뜻합니다." - <밥상에서 세상으로> 본문 127쪽 중에서

'국민 학교'란 말도 '황국신민의 학교'란 뜻이어서 굳이 1996년 '초등학교'로 바꿨소. 그런데 '국민'이란 말은 계속 사용하오. 국립국어원은 '국민'은 '황국신민'이 아니라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이나 그 나라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고 풀이하고 있소. 그 '국민'이 그 '국민'인데도 말이오.

'국민'이라 말하면서 자꾸 '황국신민' 취급하려는 것 같아 울화가 날 때가 가끔 있소. 원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인민'이란 단어를 사용했소. 안타깝게도 이 단어를 북한에 넘겨주고(?) 굳이 '국민'이 바르다고 하는 꼴이라오. 나라님을 중심으로 한 '국민'의 나라에서 애국하는 일, 당연히 쉽지 않을 수밖에.

그래서 애국하는 게 건강을 해치는 일인가 보오. 실은 애국하는 게 건강만 해친다면 얼마나 좋겠소. 목숨을 해친다오. 안창호가 그렇고, 안중근이 그렇고. 대부분의 애국자가 목숨을 담보로 했다오. 나라를 지키다 스러진 장병들이나 독재에 항거하다 죽은 이들은 어떻고요.

그런데 저자의 아버지는 정의감에 충천한 기자 딸을 보고 건강을 해친다고 했으니 어느 면에서 보면 호사로운 말인지도 모를 일이오. '-대, -당, -원, -관' 이런 건물 안에서 애국하는 것 말고, 진짜 애국하는 거로 건강을 잃는다면 한 번 해볼 만하지 않겠소.

저자는 아버지에게 배운 것들을 통해 아버지를 맘껏 자랑한 후, 인생을 살면서 배운 저자만의 노하우를 가르쳐주고 있소. 대강 적으면 이런 것이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부모를 바꾸려 말고 나를 바꿔라. 어른도 선생도 틀릴 때가 있다. 옳은 말일수록 낮은 소리로 하라. 시도 좀 읽으며 살아라. 미래를 준비하되 현재의 삶을 포기하지 마라. 죽음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 젊은이도 죽는다. 미래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잘 살다 잘 죽어라. 자기만의 생각으로 살아라.'

밥상머리에서 젓가락이 서툰 딸에게 "원하는 깍두기 하나 제대로 집어 들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던 아버지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배웠다는 저자의 밥상머리 철학을 오늘날 아버지들과 자녀들이 곱씹어 봄 직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