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여류 소설가 나딘 고디머(Nadine Godimer)가 현지시간으로 14일 90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아래에 그의 사망 소식을 담은 오늘 연합뉴스 기사와 1991년 10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담은 연합뉴스 기사를 옮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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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연합뉴스 기사:
'보호주의자', '줄라이의 사람들' 같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비판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노벨문학상 수상 여류 소설가 나딘 고디머가 14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의 가족들은 이날 성명을 통해 고인이 요하네스버그 자택에서 전날 밤 노환으로 타계했으며 아들 휴고와 딸 오리안이 임종을 지켰다고 밝혔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지난 60년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 고디머는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하는 소설을 발표하는 등 현실 비판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1923년 11월20일 유대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고디머는 15세 때 첫 단편소설을 쓴 이후 15편의 소설과 약 20편의 수필과 비평서 등을 발표했다.
백인인 고디머는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흑인이나 백인이 어떠한 고뇌와 갈등을 겪는지를 작품에서 주로 다뤘다.
1987년 소설 '자연의 위안'에서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과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자유를 예언한 고디머는 199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남아공에서 1948년~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유지되는 동안 '줄라이의 사람들'을 비롯한 고디머의 저서 3편은 판매가 금지되기도 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 이후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 이어갔으며 인종 차별 정책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대변해 왔다.
고디머는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투쟁을 벌이다 집권 여당이 된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고 지난해 12월 타계한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과도 장기간 교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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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0월 4일 연합뉴스:
올해 노벨 문학상은 南아프리카공화국 인종차별주의 정책아래서의 개인적 삶과 복잡한 사회상을 날카로운 필치로 묘사해온 "南阿共문학의 작은 거인" 나딘 고디머 여사(67)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3일 고디머 여사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하고 南阿共의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배경으로 한 그녀의 복잡하고도 예리한 작품세계가 "인간성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커다란 영향과 혜택을 인류에게 선사했다"고 선정이유를 설명했다.
여성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것은 지난 66년 독일계 스웨덴인인 넬리 작스이래 25년만에 처음이다.
한림원은 소설가 고디머가 "그녀의 주변환경에 펼쳐져있는 극히 복잡한 개인적,사회적 관계들을 세밀하고도 밀도있게 묘사해왔다"고 평가하고 그녀가 정치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참여에 적극 나서면서도 훌륭한 작품세계를 유지해왔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 38년 동안 그가 발표한 10권의 장편소설과 2백편의 단편이 "역사전개과정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내포하고있는 한편 역사과정 형성에 기여해왔다"고 높이 평가하고 구체적으로 '보호주의자(1974)', '버거의 딸(1979)', '7월의 사람들(1981)'을 역작으로 꼽았다.
한림원은 복잡한 기법을 구사한 이 소설들이 "점차 흑인들의 의식이 성장되어가는 아프리카의 정신적,물질적 환경아래서 개인들이 처한 입장을 훌륭히 그려내고있다"고 평하고 그외 단편들도 "치밀하고 꽉짜여있어 그녀의 작가로서의 높은 창조적 역량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면서 특히 지난 75년 출간된 '단편선'을 들었다.
한림원은 한편 이번 고디머여사의 수상이 南阿共의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南阿共 백인정부가 고디머 여사의 소설들이 띠고있는 정치성을 이유로 국내판금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 "국외망명은 곧 세계에서 설 자리를 잃는것"이라며 국외이주를 거부한채 南阿共 국내에 거주해온 고디머 여사는 강연차 머물고있는 뉴욕에서 "매우 놀랍고 흥분스럽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일관되게 인종차별정책을 비난하는 한편 흑인정부 수립을 주장해온 그녀는 자신이 작품을 통해 흑백인종간 관계와 이에따른 도덕적 갈등을 묘사해왔다고 말하고 "왜냐하면 이같은 갈등이 실제로 존재하고있으며 내 주변사람들이 살아가고있는 형태이기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南阿共정부가 인종차별정책 철폐를 향해 나아가고는 있으나 아직 인종적 불공정이 종식되기까지는 요원한 실정이라고 지적하고 "우리는 계속 압력을 가해야하며 설사 그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낙심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리투아니아에서 이주해온 유태인 시계공과 영국계 유태인사이에서 태어난 고디머 여사는 광산촌인 스프링스에서 자라며 무용가를 꿈꾸어왔으나 그녀의 허약체질을 염려한 어머니의 반대로 중단했다.
9살때부터 습작을 써온 그녀는 11살때 건강문제로 학교를 그만둔 뒤 독서에 몰두, 스프링스 도서관에서 책을 벗삼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왔으며 15살때 문예지를 통해 첫 작품을 내놓았다.
27살때에는 그녀의 첫 작품집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가 출판됐다.
58년에는 '이방인의 세계'가, 66년 '가버린 브루주아 세계', 78년 '버거의 딸'등 장편소설들을 발표했으나 모두 南阿共에서 판금됐으며 최근작으로는 흑인 유부남이 같이 활동하는 여자 백인인권운동가와 사랑에 빠져드는 것을 내용으로하는 '내아들 이야기(1990)'와 올해 출간된 단편선 '도약(JUMP)'이 있다.
그녀는 지난 89년 12월 반역죄와 테러혐의로 법정에 선 흑인들을 변호함으로써 극적으로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한편 넬슨 만델라,올리버 탐보를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들의 폭력주의도 지지한다고 공언했었다.
그녀는 당시 법정에서 "나는 65년간이나 여기서 살아왔기때문에 흑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폭력을 자제해왔는지 익히알고 있으며 백인들은 책임을 져야한다"고 南阿共의 인종정책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었다.
고디머 여사는 현재 요하네스버그에서 지난 54년 결혼한 두번째 남편 라인홀드 카시러씨와 살고있으며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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