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장

최열, 치코 멘데스, 시에라 클럽(2014년 4월 30일)

divicom 2014. 4. 30. 16:06

세월호 사건이 묻은 것은 3백 명이 넘는 소중한 목숨만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중요한 소식, 캐보아야 할 범죄 등 많은 것들이 언론의 관심 밖으로 물려나 세월호의 진실이 규명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중요하게 다뤄져야 했지만 슬며시 지나친 소식 중 하나는 환경운동가 최열 씨가 미국 최대의 환경단체 시에라 클럽으로부터 치코 멘데스 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최열 씨에게 축하하고 감사하며 자유칼럼을 통해 이 소식을 전해주신 김수종 선배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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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코 멘데스의 산소

2014.04.30


환경 운동가 최 열씨(환경재단대표)가 지난 23일 ‘시에라 클럽’이 수여하는 치코 멘데스 상(賞)을 받았습니다. 원래 작년 9월에 시에라 클럽 본부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수상하기로 된 것인데, 교도소에 있던 최 씨가 출소한 올해 시에라 클럽의 리처드 셀라리우스 부회장이 한국을 찾아 뒤늦게 시상식을 한 것입니다. 

시에라 클럽은 미국 최고(最古) 최대(最大)의 민간 환경운동기구(NGO)입니다. 이 기구는 1892년 미국의 전설적인 자연보호주의자 존 뮤어(John Muir, 1838~1914)가 창립했고, 지금은 회원수가 140만 명에 이릅니다. ‘시에라’(Sierra)라는 말은 존 뮤어가 그토록 사랑했고 보호하기를 원했던 미국 서부의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가 남긴 수상집 ‘시에라에서의 나의 첫 여름’은 자연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는 명저입니다.

100여 년이 지난 후 그가 남긴 시에라 클럽은 미국에서 가장 막강한 민간단체로서 광대한 미국 땅에서 일어나는 개발정책 및 자연보전 정책에 심대한 영향력을 미칠 뿐 아니라, 국제 환경 이슈에서도 그린피스에 버금가는 발언권을 행사합니다. 

시에라 클럽은 매년 환경과 관련된 20여 개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한 학자, 환경운동가, 저널리스트, 법률가, 공무원, 사진작가, 자원봉사자 등에게 상을 수여합니다. 그중 최고상은 창립자의 이름을 딴 ‘존 뮤어 상’입니다. 그 해 선정된 20여 명의 수상자 중에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한 사람이 이 상을 받는데, 수상자는 대개 미국인입니다. 

최 열씨가 받은 ‘치코 멘데스상’은 환경보전을 위해 용기와 리더십을 발휘한 비(非) 미국인에게 수여됩니다. 시에라 클럽은 최 씨를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한국과 아시아지역을 무대로 30여 년간 환경운동을 벌였고 ‘4대강 사업'을 반대하다 수감되었다.”고 밝혔습니다. 

환경 운동가에겐 명예롭기 그지없는 ‘치코 멘데스 상(賞’),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들어보지 못한 낯선 명칭입니다. 세상에선 환경을 지키기 위해 이런 일도 벌어진다는 차원에서 음미해볼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치코 멘데스(Chico Mendes ,1944~1988)는 아마존 열대우림 지역인 브라질 아크레주(州)에서 고무 수액을 채취하는 노동자였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고무액을 채취해서 생계를 유지했고 숲을 보전하며 이용하는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대규모 상업자본이 아마존 밀림에 목축을 시작했습니다. 숲에 불을 지르고 불도저로 밀어 그 자리에 대규모 목장을 만들었습니다. 미국 등에 쇠고기를 공급하면 돈벌이가 좋기 때문입니다. 밀림은 휑하니 붉은 땅으로 변해갔습니다. 치코 멘데스는 고무 채취 노동자를 규합하여 불도저를 막고 숲에 불을 지르지 못하게 방해했습니다. 그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숲과 친하게 지내며 열대우림에서 소득원을 찾아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힘은 거대했습니다. 멘데스는 이런 일을 하려면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정치 현장에 뛰어들어 지주들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의 주변엔 죽음의 그림자가 맴돌기 시작했습니다. 지주들은 멘데스를 없애기로 모의하고 1988년 12월 저격수를 보내 집 뒤뜰에서 샤워를 하는 그를 향해 총을 난사했습니다. 그의 죽음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아마존 열대우림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쏟아졌고 아마존 보전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멘데스는 환경운동의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주지사 또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진출하면서 멘데스의 지속가능한 개발 방식이 법제화되었습니다.

아마존 밀림은 한국에서 보면 지구 정 반대편에 있습니다. 방송 탐사팀이나 찾아가는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한국인과 아무 상관이 없는 곳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아마존은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먹은 약 중에 아마존이 아니면 채취할 수 없는 성분이 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마존 강은 남아메리카의 등뼈와 같은 안데스 산맥의 빙하에서 발원하여 대서양으로 흘러내리는 세계 최대의 강입니다. 1,100개에 달하는 지류가 모여 이뤄진 아마존 강이 대서양으로 쏟아내는 유량은 초당 23만 톤으로 평상시 한강의 400배가 넘습니다. 

이렇게 큰 강이 흐르면서 형성된 것이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 열대우림입니다. 남한 면적의 50배 넓이의 이 열대우림은 지구 기후체계 및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역할 중 하나가 산소 공급원입니다. 인간이 정상적으로 숨 쉬며 살 수 있는 것은 공기 중에 산소의 함유량이 21%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학자가 추정하기로는 아마존 열대우림이 뿜어내는 산소의 양은 지구 전체가 생성하는 산소량의 30%는 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한국 땅에서 숨을 쉬며 살지만 지구적인 시각에서 보면 아마존 열대우림이 만들어낸 산소로 편안히 숨 쉬는 셈입니다. 그러니 미미한 양이지만 치코 멘데스가 지킨 숲에서 나오는 산소 분자들이 지금도 우리의 폐를 순환하고 있을 것입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